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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맛] 올해의 아저씨로 그대를 선정하리 (최종회)

<지붕 뚫고 하이킥!> 정보석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이 시점에 몇명 있지도 않은 친구 중 하나가 나의 안티였음이 밝혀지다니(<씨네21> 732호 ‘오마이이슈’ 참조) 먼저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나, 손석희 정말로 좋아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만들거나 참여한 작품을 꼭 경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박찬욱을 좋아한다고 박찬욱 영화를 꼭 봐야 하는가 말이다(으응? 이거 아냐?).

그녀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지만 주얼리 정을 더 좋아하긴 한다. 실은 사랑한다. 한때 MSN 대화명이 보사마였으며, 방송 담당후배에게 보사마 인터뷰는 어떻겠냐며 지그시 강압적으로 기사화도 성사시켰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직전 그가 출연한 <지붕 뚫고 하이킥!>의 모든 장면을 낱낱이 복기하는 짓을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또다시 하고 있다.

내가 <지붕킥>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청춘남녀들의 러브러브 사각관계도 아니고, 해리와 신애의 <톰과 제리>식 아옹다옹도 아닌 바로 보사마와 세경의 치열한 경쟁과 권력관계다. 일반적으로 한 집안의 서열 2위쯤 되는 사위와 권력의 최하층에 있는 가정부와의 암투는 한국 드라마사에 전무후무한 플롯이며 대한민국 사위계의 한점 얼룩으로 남은 미달이 아빠조차 이렇게 기묘한 긴장관계를 보여준 적은 없다. 게다가 이 관계에서 표면적인 약자인 세경은 ‘시크한 듯 무심’한데 보사마 혼자서 맹렬하게 경쟁심과 권력의지를 불태운다는 것이 비극적인 부조리다.

이순재 고사를 앞두고 세경을 견제하며 공부하는 보사마는 측은하고, 유일하게 만만한 세경에게 종종 언성을 높이며 명령하고 싶어 하는 보사마는 치사하다. 그런데도 보사마가 멋진 건 이렇게 웃기고 한심해서 도무지 좋게 보이기 힘든 그 모든 상황에서도 늘 품위를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라마 캐릭터건 버라이어티쇼의 코미디언이건 요즘 웃음을 주는 아저씨들은 대체로 가부장의 권위와 함께 품위를 패키지로 갖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다. 두개가 분리되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2009년 텔레비전 화면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아저씨 캐릭터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사마만이 권위의 부재와 품위의 만개를 실천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가 아직 잃지 않은 한 가닥 낭만주의는 이 드라마의 뾰족하고 차가운 웃음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미지근한 손난로를 제공한다. 그래서 ‘아저씨의 맛’의 막을 내리며 올해의 아저씨로 보사마를 선정할란다. 보사마, 아니 족사마! 2010년에도 족구황제 족사마의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처럼 잠깐잠깐(자주는 말고요) 당신의 찬란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세요.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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