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라졌다. 엄마가 여행을 간 사이에, 아빠가 일하는 사이에, 오빠가 방치한 사이에 아이는 자취를 감췄다. 가족들은 몸져눕거나 속죄하거나 기행을 저지르는 방식으로 막내를 잃어버린 책임을 나눠진다. 그런데 아이가 실종된 지 석달 뒤, 한강에서 익사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소설의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이 불길한 기운의 사건은 아이의 실종사건과 익사체가 연관돼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정이현 작가의 신작 <너는 모른다>의 초반 몇 챕터를 이끄는 힘은 서스펜스다. 익사한 의문의 남자는 누구이며, 아이와 남자는 어떤 관계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정이현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도회적인 이미지의 가족 구성원도 관심을 끈다. 실종된 소녀 김유지의 가족들은 누구나 꿈꿀 만한 강남의 정돈된 빌라에 산다. 개인 사업가인 아버지는 가족을 아낌없이 지원하며, 화교 출신의 새엄마는 가끔 대만의 옛 애인을 만나지만 가족에 소홀함이 없다. 철없으며 나약한 첫딸 은성은 전형적인 부잣집 딸내미, 차분한 성격에 명석하지만 꿈이 없는 둘째 혜성은 요즘 20대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런 캐릭터를 중심으로 아이의 실종사건을 파고들다니.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필두로 2030세대의 지형도, 현실 지향적, 도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던 정이현 작가의 이력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분명 세련된 도시 미스터리일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다.
하지만 그 짐작은 틀렸다.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너는 모른다>는 이 작품이 철저히 사람에 대한, 관계에 대한 소설임을 인식시킨다. 서로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유지의 실종사건을 겪으며 낯선 서로의 모습을 목격한다. 묻어뒀던 가족의 비밀은 낱낱이 밝혀지고, 그들의 얕은 관계도 부서진다. 서서히 침몰하는 한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관계를 지켜나가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얘기한다. 아무것도 ‘너는 모른다’고.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와 스타일의 농도를 낮추고 좀더 정공법적으로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아려온다. 그건 어떤 것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김유지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도,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은 익사체에 대한 슬픔도 아니다. 소설을 끝맺는 혜성의 마지막 독백처럼 “문득 내가 이들(타인)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이 두렵고 아프게 느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