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의, 강동원을 위한 영화.” 최동훈 감독의 표현대로 <전우치>는 강동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강동원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전우치라는 캐릭터의 모델이자 영감이 됐고, 촬영 기간 내내 현장의 중심에 자리했으며, 영화가 상영되는 거의 모든 순간까지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릇 주연배우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되묻는 이도 있겠지만, <전우치>를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강동원은 9.5 이상의 평점을 너끈히 받을 법한 활약을 펼쳤으니 그 격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어쩌면 <전우치>는 처음부터 강동원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는지도 모른다. 심각함이나 진지함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뺀질뺀질 도사 캐릭터는 강동원의 본성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평소 성격이 그렇게까지 개구지지는(‘짓궂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 않은데 결국 다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우치>를 보노라면 전우치보다 자연인 강동원이 더 천방지축 악동 같다고 믿게 될 정도다. 조선시대 왕의 연회장에 찾아가 옥황상제인 양 능청을 떨거나 ‘최고의 도사’가 되겠다면서 철부지처럼 청동검을 찾아 헤매는 전우치의 모습은 강동원이 풍기는 ‘소년의 향기’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 강동원의 타고난 ‘이기적 유전자’가 결합되니 영화 속 전우치는 순정만화 톤으로 그려진 액션 영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둔갑술과 분신술을 마음대로 쓸 줄 아는 도사를 연기하는 데도 강동원은 이점을 갖고 있었다. 충무로의 대표적 ‘스포츠맨’으로 손꼽히는 강동원은 영화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와이어 액션을 직접 능숙하게 소화했다. “위험하고 난이도 높은 장면은 서울액션스쿨의 액션연기자가 대신 해줬다”고 하지만 그런 대역장면이라고 해봐야 두신 정도였다. 그의 운동신경이 광채를 드러낸 장면은 담벼락을 타고 요괴와 맞상대를 펼치는 수직 와이어 액션신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와이어를 몸에 매단 채 그는 담벼락 위를 달렸고 점프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다 보니 체력은 바닥났지만 그는 전후반을 비긴 뒤 연장 전후반을 거쳐 승부차기에 들어가는 축구선수의 심정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스탭들은 내가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그들도 쉴 테니까. 그런데 내가 체력은 좀 강한 편이다.” 아무리 강골이라 해도 여덟달 반 동안 <전우치> 촬영을 마친 뒤 달랑 2주만 쉬고 <의형제> 촬영에 임했다니 강동원도 전우치처럼 분신술을 썼던 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체력이 강하다고 고생스럽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12월 초 <전우치> 기술시사를 보면서 속이 뜨끔뜨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보며 웃으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지더라. 하도 고생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 촬영 기간 동안 그런 육체적 개고생을 보상해준 것은 뒤풀이 자리였다. <전우치> 전까지 강동원은 촬영이 끝나면 “다음날 찍을 것을 생각하고 준비하기 위해” 숙소로 곧바로 돌아가는 범생과 배우였다. <전우치> 촬영 초기에도 그의 이같은 습성은 여전했다. 그러나 김윤석, 송영창, 김상호, 주진모 같은 선배 연기자들이 가만뒀을까. 이들은 “뭐 하냐? 나와라” 하며 그를 술자리로 불러냈다. “연기자들끼리 토론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이처럼 끈끈한 동료애를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결국 선배님들이 나를 빛으로 인도하신 거다. (웃음)” 촬영에 임하는 순간의 여유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신뢰 또한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건 배우 강동원이 성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할 터. 내년이면 서른살이 되는 그는 <전우치> 현장에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됐다. “항상 나는 스스로 신인급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배우 중에서는 까마득한 막내였지만, 스탭들은 ‘선배님’, ‘형’, ‘오빠’ 하면서 존칭을 쓰는 거다. <의형제> 때도 그랬다. 부담도 되더라. 스탭들 고생하는 게 신경도 쓰이고.” 그의 소회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건 ‘책임감’이다. 전우치가 부적을 버리고 도술의 세계를 깨쳤듯, 강동원 또한 스타라는 딱지를 벗어버리고 이제 아흔아홉 굽이 배우의 길로 확실히 접어든 것이다.
최악 전우치가 10명의 분신을 만들어 싸우는 장면이 대박이었다. 11일동안 매일 한명씩 분신을 죽여가면서 촬영했는데, 정말 체력이 바닥까지 갔다. 키가 186cm인데 체중이 66kg까지 갔고, 지방이 완전연소됐는지 배에 껍질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최동훈 아주 징글징글하다. 어떨 때는 감독님에게 고집도 부리고 성질도 부렸다. 원망스럽기도 했고. 그러는 동안 큰 정이 쌓인 것 같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전우치> 2편을 만들면 나보고 시나리오를 쓰라고 하더라. 그래서 ‘공중에 매달린 초랭이를 화담이 날아와 가로챈 뒤 63빌딩 옥상에 뛰어내린다. 지상에서 전우치가 구경하는 와중 영화감독이 등장해 63빌딩에서 점프한다. 특별출연은 최동훈…’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표정 장난기 넘치는 전우치의 표정을 만들어야 했는데, 과부(임수정)를 보쌈하러 가는 장면을 찍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말로 변신한 초랭이를 타고 앉아 내려다 보는 장면이었는데 양쪽 입꼬리가 슥 내려가는 만화적 표정이 지어지면서 ‘야, 이거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정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었다.
운동 공 갖고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한다. 와이어 액션에는 현대무용도 도움이 됐는데, 그건 <형사> 준비 때문에 배웠다. 일주일에 6일동안 매일 5시간 이상 연습했다. 나중에 무용 선생님이 “콩쿠르에 출전하자”고 했을 정도다. 물론 축구가 최고다(그는 고등학생 시절 축구선수였다). 일이 없을 때는 새벽 6~7시에나 자는데 그것도 축구 때문이다. 토요일, 일요일 프리미어리그 중계, 수요일에는 챔피언스리그, 칼링컵을 보면 자연히 새벽에 잘 수밖에 없잖나. 그게 악순환되는 거다.
새벽 축구중계가 없는 새벽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스케줄 정리나 집안 청소도 한다. 음악도 잘 듣는데, 나는 한 곡만 찍어서 수백번 들어서 완전 마스터한 뒤 ‘이제 끝~’하고 다른 곡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요즘엔 데미언 라이스의 <Accidental Babies>에 다시 꽂혀서 창고에 넣어뒀던 피아노까지 꺼내서 연주하고 있다. 기타도 배우는 중인데 이런 잡기도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배우는 좋은 직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