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DVD로 직행한 해외 코미디영화 5편
외국에서 떼돈을 벌었기에 안심하고 수입했더니 망했다? 코미디영화를 개봉해본 영화사가 여러 번 경험했을 사실이다. 그래서 ‘외국 코미디는 한국과 안 맞는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웃음의 코드는 나라마다 매우 달라서 국경을 넘어 성공한 코미디영화는 생각보다 적다. 올해 미국에서 개봉돼 흥행에 성공했거나 괜찮은 평가를 얻은 코미디들이 한국에서 간판 한번 내걸지 못한 이유는 그렇다. 그나마 DVD로 선보이면서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된 다섯편을 골라봤다. 웃음의 팬이라면 배를 잡고 볼 영화인데다 몇몇 편은 작품성도 우습게 볼 게 아니다.
화장실 유머의 진화
<행오버> The Hangover 2009년 / 토드 필립스 / 100분 / 2.35: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자막 / 워너브러더스 화질 ★★★★ 음질 ★★★☆ 부록 ★★
결혼을 몇 시간 남겨두고 신랑이 도착하지 않자 초조해진 신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총각파티에 동행한 친구 중 한명은 “망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행오버>는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신랑은 절친한 두 친구, 처남이 될 덜떨어진 남자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화끈한 밤을 다짐했다. 다음날, 엉망이 된 호텔 방에서 웬 아기와 깨어난 세 사람은 신랑과 지난 12시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행오버>는 ‘화장실 유머 영화’의 진화한 버전이다. 놀이와 쾌락 앞에선 아이처럼 사족을 못 쓰는 성인 남자를 희화화하는 가운데, 추리와 촌극을 뒤섞은 영화는 짜임새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악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성인 전용 농담도 보고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 수준이다. 근래 본 가장 재미있는 미국 코미디로 추천한다.
<행오버>는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미국 극장에서 상영되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3500만달러로 제작된 영화가 거둔 수익은 2억8천만달러에 달한다(미국에서 올해 네 번째로 많은 돈을 번 영화다). 그럼에도 홈비디오로 직행한 한국에선 DVD도 소박하게 나왔다. 세 가지 부록(27분)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로큰롤의 끓는 피를 맛보라
<락앤롤 보트> The Boat That Rocked 2009년 / 리처드 커티스 / 135분 / 2.35: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자막 / 유이케이 화질 ★★★★ 음질 ★★★★ 부록 ★★★
1960년대 중반, 영국의 로큰롤은 황금기를 맞았으나, <BBC>가 대중음악에 할애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45분뿐이었다. 이즈음 해적 라디오방송이 나타나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락앤롤 보트>는 ‘라디오 록’이라는 가상의 라디오방송을 내세워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해상에서 자유로운 공기를 맡으며 맘껏 개성을 발휘하는 DJ들, 우연히 괴짜들의 무리에 끼어들어 한철을 보내게 된 소년, 해적방송을 비도덕적 집단으로 규정해 파괴공작을 펼치는 공권력을 오가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영화가 묘사한 것과 실제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낡은 세상에 저항하는 로큰롤의 끓는 피와 생명력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영국영화계의 숨은 보물과 유명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 블루스와 록과 스탠더드 팝을 아우르는 진짜 노래의 향연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리를 들썩이게 만든다. 135분 동안 해프닝에 맞춰 에피소드별로 진행되는 스타일 때문인지 흥행 실패의 쓴맛을 본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감독, 제작자, 배우가 나눈 음성해설은 비밀과 농변으로 채워져 있으며, 37분에 이르는 12개의 삭제장면은 애초 3시간에 육박했다는 상영시간의 흔적이다.
<졸업> 버금가는 성장영화
<어드벤처랜드> Adventureland (블루레이) 2009년 / 그렉 모톨라 / 107분 / 1.85:1 아나모픽 / DTS-HD 5.1 영어 / 한글 자막 / 브에나비스타 화질 ★★★★ 음질 ★★★☆ 부록 ★★★☆
1987년, 대학을 갓 졸업한 제임스는 뉴욕에서 보낼 대학원 생활과 유럽 여행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이별을 선언한 데 이어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그만둔다는 말을 듣는다. 아버지의 직장문제가 이유였다(레이건 시대 중·하층민의 삶을 생각해보라). 고향 피츠버그로 돌아가 돈을 마련해보려고 둘러봤으나, 언론을 전공한 그가 만족할 아르바이트 자리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놀이공원 ‘어드벤처랜드’에서 게임 담당으로 일하게 된 그는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철없는 소년은 그곳에서의 뜻깊은 만남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몰랐다. 따분한 인생에 조금은 실망한 사람들, 상처를 안고 사는 여린 사람들이 어느새 그의 곁에 하나둘씩 자리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살던 20대가 통과하는 무력감을 잘 표현한 <어드벤처랜드>는 <졸업>을 떠올릴 만큼 뛰어난 성장영화이며, 1980년대 중반에 롱아일랜드 놀이공원에서 일한 경험을 영화화한 그렉 모톨라는 성숙한 감독으로 거듭 태어났다. ‘요 라 텡고’가 맡은 음악 또한 로파이 코미디의 완성에 일조한다. 주연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와 감독의 성실한 음성해설, 메이킹필름(17분), 삭제장면(3분), 3개의 특별영상(10분)에서 공히 정성이 느껴진다.
<다이 하드>의 코미디 버전
<쇼핑몰 캅> Paul Blart: Mall Cop 2009년 / 스티브 카 / 91분 / 1.85: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자막 / 유이케이 화질 ★★★☆ 음질 ★★★☆ 부록 ★★★
<행오버>에 “뚱보라서 우스워”라는 대사가 나온다. 살찐 사람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을 대변하는 말이라 하겠다. <쇼핑몰 캅>의 주인공도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사는 뚱보 아저씨다. 폴 블라트는 경찰을 꿈꾸며 노력과 열정을 다하지만, 저혈당증으로 인한 체력문제로 경찰학교 입학 테스트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그가 대신 선택한 직업은 쇼핑몰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원. 손님들이 하찮게 여기고 동료들이 놀림감으로 대하는 속에서도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긍지로 대처해나간다. 어느 날 벌어진 인질극은 그의 몸속에 살던 영웅을 끄집어낸다. 텅 빈 쇼핑몰에 홀로 남겨진 그는 짝사랑하는 여자와 딸을 구하고 쇼핑몰의 안전을 되찾고자 온몸을 던져 싸운다.
코미디 버전 <다이 하드>를 의도한 <쇼핑몰 캅>은 올해 초 미국에서 개봉돼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튀는 편집과 비현실적인 설정, 어수룩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착한 남자가 뒤뚱거리는 모습이 짠한 감동을 준다. 살쪄서 슬픈 당신의 자신감 회복용으로 그만인 영화다. 블라트 역의 케빈 제임스와 제작자의 음성해설은 그냥 웃으면서 들을 것이고, 10개의 삭제장면(12분)과 50분짜리 특별영상도 별다른 영양가는 없다.
결말이 따듯한 삶의 찬가
<세븐틴 어게인> 17 Again 2009년 / 버 스티어스 / 102분 / 2.35:1 아나모픽 / DD 5.1 영어 / 한글 자막 / 워너브러더스 화질 ★★★☆ 음질 ★★★☆ 부록 ★☆
‘시간을 거슬러 자기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설정은 할리우드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멋진 인생>으로 시작해 <페기 수 결혼하다>와 만나고 <빅>을 뒤집는 <세븐틴 어게인>도 그런 영화다. 1989년, 고등학생 마이크 오도넬은 전도유망한 농구선수였다. 하필 대학의 스카우트 담당자들이 시합을 보러 온 날, 여자친구가 임신을 알렸다. 아기의 희망에 그는 게임을 포기했고,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후 18년간, 아내가 발목을 잡은 탓에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았다고 불평해온 그는 이혼을 앞둔 상태다. 회사에 사표를 낸 뒤 다시 찾은 학교에서 조우한 관리인이 “다시 시작하고 싶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17살로 돌아간 자신을 발견한다.
<세븐틴 어게인>은 빤히 들여다보이는 곤란한 상황과 극복의 과정, 최선을 다해 사는 것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이 낯간지러울 정도지만, 결말부의 훈훈함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우직한 삶을 예찬하는 할리우드영화의 힘이다. 하긴 잭 애프런의 팬은 몸매를 감상하느라 그딴 건 관심도 없겠지만. 아웃테이크(3분), 안무연습(2분), 13개의 추가장면(16분)으로 구성된 DVD 부록은 평범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