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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진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장미 사진 최성열 2009-12-24

씨네프랑스 참석차 한국 찾은 클로드 를르슈 감독

“내 삶은 영화에 대한 러브스토리다.” <남과 여>의 감독인 클로드 를르슈는 프랑스는 물론 한국 감독들의 감수성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음악과 영화, 무엇보다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노 감독은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영화사상 흔치 않은 시도”라고 단언한 대작 뮤지컬 <거기 있는 연인들>(Ces amours la)의 후반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12월14일 메종 에르메스. 프랑스영화 정기상영회인 씨네프랑스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방문한 클로드 를르슈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마주 앉은 이의 눈을 들여다보던 백발의 신사는 말했다. “죽기 전까지 영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거다. 영화 없이는 내 인생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짧은 몇 마디야말로 영화를 향한 최상의 찬사가 아닐까 싶었다.

-13살 무렵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닌 걸로 아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나는 영화를 너무도 사랑한다. 내 인생에서 직업으로 영화를 만난 건 큰 행운이다. 나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고,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이 더 풍성해지고 있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새롭다. 기억력이 좋았다면 항상 화를 냈을 텐데. (웃음) 사람들마다 어떤 나이대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나는 영원히 열아홉살일 거다.

-씨네프랑스 ‘클로드 를르슈 감독전’에도 포함된 2007년작 <대중소설>(Roman de gare)은 칸영화제에 익명으로 출품한 작품인데. =그동안 영화를 40편 넘게 찍었다. 그 정도면 영화를 만들 때마다 기자들이 내놓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익명으로 영화를 공개했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보고 싶더라. 언론에 대한 짓궂은 복수랄까. (웃음) <대중소설>을 보고 다들 젊은 감독의 작품이라고 했으니까.

-‘기차나 기차역에서 주로 읽는 삼류소설’이라는 뜻의 제목부터 비평에 대한 어떤 시각을 암시하는 걸로 보인다. =맞다. 영화상에서도 그렇다. 주인공이 대필작가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않나.

-2년 전 부산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매번 바뀐 이상형에 따라 배우를 캐스팅”하며 “오드리 다나가 거의 현재의 내 이상형”이라고 말했는데. =오드리 다나는 내가 지금껏 목격한 가장 위대한 여배우 중 하나다. 재능있고, 내 영화세계와 가까운 이미지를 지녔으며, 연기력도 뛰어나다.

-그렇다면 나머지 여배우들은 누구인가. =<남과 여>의 아누크 에메와 다수의 작품을 함께한 애니 지라도다. 내 영화에 방점을 찍은 여배우들이다. 사실 배우와 감독간의 관계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연애와 비슷하달까. (웃음) 나는 연기지도를 따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본연의 모습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연극이 배우를 무대에 세운다면 영화는 배우를 생활 속에 세운다. 그 사람 본연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배우들은 부서지기 쉬운 기질의 사람들이라 강압적이어서는 안된다.

-한편으로 “사랑이 많아지면서 내 영화도 더 많아졌다”고 했다. 사랑의 에너지가 영화 작업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적은 없나. =인생에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살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은 굉장히 진실해지는 경향이 있다. 거짓말은 줄어들고, 서로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나는 그런 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건 진실의 순간을 영화에 담는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잊지 않고 건네는 조언이 있다면 뭔가. =하나밖에 없다. 카메라를 들고 찍어라! 나는 모든 작품을 그렇게 만들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배웠고, 매번 영화학교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웃음) 찍는 것만이 영화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거기 있는 연인들>은 어떤 영화인가. “뮤지컬”이고 “1920년대부터 현대까지를 배경으로 한다”는 그 영화가 맞나. =맞다. 대작 뮤지컬영화고, 100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다. 여주인공을 주축으로 그녀의 부모와 자식에 이르기까지 3대의 이야기를 아우르려고 한다.

-이번엔 어떤 음악을 다루나. =모든 종류의 음악에 대한 오마주가 있을 거다. 특히 재즈, 클래식, 샹송이 주축이 될 테고. 내 영화에선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곤 했는데, 이번엔 음악 자체가 주인공이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맞다. 공통점은 물론 있다. 이전 작품을 찍을 때마다 이 영화의 모티브를 발견했고,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만큼의 연륜을 쌓은 뒤에야 만들 수 있을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40년 가까이 준비했다. 전 인생에 걸쳐 꿈꿔왔다. 내 영화인생이 시작된 지 50년이 되는 시점이라 그걸 기념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지금이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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