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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짠한 가족 이야기 <판타스틱 Mr. 폭스>
이화정 2009-12-23

synopsis 여우로의 본능 대신 안온한 가정과 안정적인 직장을 택한 여우 Mr. 폭스. 그러나 새집에서의 전원생활은 숨겨둔 그의 야생성을 일깨운다. 친구 카일리와 조카 크리스와 한팀을 이룬 폭스는 곧 예전의 기술을 되살려 습격에 나선다. 습격 대상은 양계장과 거위, 칠면조, 사과주스를 쟁여놓은 마을의 3대 농장. 그러나 폭스의 약탈에 분노한 세 농장주는 폭스 소통작전에 나서고 급기야 폭스 가족과 이웃 동물까지 지하세계에 갇혀버린다. 곧 위기 탈출을 위한 폭스의 판타스틱한 모험이 시작된다.

로알드 달 원작의 묘미를 제대로 알아차린 이가 팀 버튼인 건 다행스런 일이었다. 아름답고 심성이 고운 인물들은 사절. 무자비하고 비열하며, 늘 잔꾀를 부리다가 뒤통수를 맞는 속물들이 로알드 달의 소설 속 인물들이다. 그는 낄낄거리는 듯한 유쾌한 필체로 진실에 가장 가까운 인간들을 야멸차게 그려냈다. 그러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뒤틀린 상상 세계만큼 기괴한 판타지를 창조하는 팀 버튼에게 딱 맞는 원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엉뚱하고 느린 방식의 감각을 지닌 웨스 앤더슨에게라면! 이걸 보노라니 로알드 달의 원작이 왜 좀더 빨리 웨스 앤더슨과 만나지 않았는지 억울할 지경이다. 그는 팀 버튼의 비틀기와 완벽히 다른 방식으로 로알드 달을 재해석한다. 지극히 짧은 원작 <멋진 여우씨>가 오히려 웨스 앤더슨의 창의적 해석에는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고약한 농장주와 여우 폭스와의 대결은 그대로, 대신 동화 속 폭스를 좀더 디테일하게 의인화하는 식이다. 특히 폭스 외엔 배경으로 처리됐던 가족들이 전면에 부각된다. 스포츠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는 사촌 크리스토퍼슨 때문에 갈등하는 아들 애쉬가 대표적인 예다. <로얄 타넨바움>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등으로 익숙한 웨스 앤더슨의 가족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영화를 좀더 웨스 앤더슨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결국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부분이다.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거부했다는 웨스 앤더슨은 인형들을 하나하나 움직여서 촬영해야 하는 까다로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실사와 가까운 인형을 창조해낸다. 시종일관 눈을 깜빡이는 인형 대신, 앤더슨은 전작의 배우들처럼 길고 느리게 따라가는 카메라를 응시하도록 깜빡이지 않는 눈(!)을 애니메이터들에게 주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일련의 과정을 돌아볼 때, <판타스틱 Mr. 폭스>를 보면서 여우 가족에게 심하게 동요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폭스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와 폭스 부인 메릴 스트립의 멋진 연기뿐 아니라, 제이슨 슈워츠먼, 빌 머레이, 에릭 앤더슨, 오언 윌슨 같은 웨스 앤더슨 실사영화의 인물들 역시 고스란히 이 재미난 놀이에 참가하니 말이다. 웨스 앤더슨 사단의 또 하나의 유쾌하고 짠한 가족 이야기가 첨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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