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보이들이 세계 최강이라는 말은 이제 생소하지 않다. 화려한 동작과 넘치는 에너지, 보고만 있어도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2006년 프랑스의 ‘배틀 올림픽 툴루즈’와 캐나다의 ‘더 배틀’ 퍼포먼스 부문과 배틀부문 우승을 자랑하는 비보이팀 ‘맥시멈 크루’가 직접 주역으로 출연한(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그들의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쓸쓸함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재미동포 출신 권우탁 감독은 예일대학교 드라마 스쿨에 들어가 시나리오도 쓰며 감독의 꿈을 키우던 중 우연히 한국 비보이들의 비디오를 접하게 됐고, 무언가에 홀리듯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들어와 지금에 이르게 됐다. 현재는 6년여의 한국 생활을 접고 다시 캘리포니아 버뱅크로 돌아가 영화를 준비 중이다. 기다리던 한국 개봉 소식에 다시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났다.
-맥시멈 크루가 주인공인데 실제 그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됐나. =오세빈을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 ‘갬블러 크루’ 소속이었는데 나중에 ‘맥시멈 크루’를 다시 결성해 활동하게 됐고, 멤버 중 ‘타조’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 ‘웨이크업’의 어머니 얘기 등은 다 실제다. 처음에는 직접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것에 대해 ‘연기 못한다’며 뺐는데 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무척 적극적이었다. (웃음) 딱히 이래라저래라 지시한 건 없다. 나로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나 기타 철학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한 것 정도다. 안타까운 건 세빈이가 정말 잘하는 비보이인데 촬영 들어가기 전 어깨가 빠져서 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한 거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해야 할 걸 왼손으로 하기도 했고.
-영화에서 세빈이 다른 멤버들에게 책을 읽으라 권하고 철학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갈등을 빚게 되는데, 어쩌면 감독이 그러는 게 마치 영=화 속 세빈처럼 강요하는 사람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다른 멤버가 “그런 책 읽을 시간에 스폰서나 구해오라” 뭐 그런 얘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비보이들의 삶과 철학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원래 학교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아니지만 그만큼 자신의 의견이나 철학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알았다. 또 누가 가르쳐주기보다 스스로 찾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그런 마인드에 젖어들었다.
-재미동포로서 군대 등 한국 젊은이들의 문제가 절실하게 와닿았나? 영화 속 맥시멈 크루도 비보이들도 월드챔피언이 되면 병역혜택을 주면 좋지 않나, 하는 얘기를 한다. =직접 가보진 못했어도 한국에 사는 사촌들이 하는 군대 얘기를 들으면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더구나 비보이들은 대학을 나온 경우도 드물고, 운동선수 못지않게 수명이 짧은데 군대까지 갔다오면 사실 남는 게 없다. 정부에서도 비보이들이 ‘한류’라며 이런저런 상품도 만들고 관심을 가지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필요에 의해 소모되기만 할 뿐이다. 그들의 얘기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스폰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푸마’로부터 스폰을 받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얼마 정도 받느냐고 물어보니 돈으로 받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입고 있는 멋진 옷을 그냥 받는다고 하더라. 그런 옷을 공짜로 얻는다면서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던데 그보다 좀더 개선돼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진짜 ‘한류 상품’ 혹은 ‘문화관광 자원’으로 생각한다면 장학금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발레리나와 비보이가 판문점에서 춤추는 장면이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뮤지컬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와 반대로 내용은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그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어쩌면 ‘비보이 영화’만큼이나 남과 북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몸담으시면서 거의 자신을 희생하며 살다가 납북되셨는데, 비록 만나뵙지 못한 분이지만 늘 인생의 모범으로 바라보며 지냈다. 혹시 이산가족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유골을 가져와서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상상하면서 젊은이들이 또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런 상징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그래서 남북통일에도 관심이 많고 나 스스로 역시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