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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웨이스 비보이

Always Be boyz

2009 한국 12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81분

개봉일 : 2009-12-24 누적관객 : 63명

감독 : 권우탁

  • 씨네216.00
  • 네티즌6.08

살아있는 거지가 되고 싶냐, 죽어있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싶냐?

비보이팀의 리더를 맡고 있던 세븐은 사회에 비춰지는 비보이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철학 책을 읽으며 배고픈 비보이보다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이 되어야 한다며 팀원들에게 말하지만 팀원들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는 세븐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비보이보다 500년 앞서 생긴 발레와 비보이가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발레 공연장을 찾던 세븐은 한 발레리나를 알게 되고 발레의 동작을 브레이크 댄스에 접목 시키려 하다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 세계 비보이 배틀 대회가 점점 가까워 오지만 세븐은 비보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획사의 상업적인 태도에 맞서다 스폰서 문제로 팀이 해체 위기에 처하지만 새로운 팀원 타조를 받아들여 세계대회 BOTY에 출전해 결승전에 오른다.
그러나 또다시 스폰서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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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철이성으로 보게 되는 비보이 영화
제작 노트
세계 최고의 춤꾼들이 모인 대한민국
<올웨이스 비보이> 대한민국 최초의 비보이 & 힙합 영화가 되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비보이를 가진 나라는 한국, 독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그 가운데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 영국의 ‘UK 비보이 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그리고 국가를 옮기면서 개최되는 ‘레드불 BC ONE’ 등 세계 4대 비보이 배틀을 잇따라 석권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은 비보이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각국 최고의 비보이들이 명예를 걸고 겨루는 비보이 대회 BOTY(배틀 오브 더 이어)는 그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다.

<스텝업>, <유 갓 서브드>, <허니>, <스톰프더야드> 등 외국은 비보이 문화가 상업화되며 힙합, 비보이에 관련한 영화들이 여러 차례 제작되어 개봉되었지만 한국 비보이 실력은 전 세계 춤꾼들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 비보이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그동안 없었다.

<올웨이스 비보이>는 비보이들의 실제적인 삶과 힙합을 다룬 대한민국 최초의 비보이 & 힙합 영화다. 권우탁 감독은 비보이와 발레리나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그들의 갈등과 서로 다른 벽, 현실적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다루며 비보이들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비보이팀 ‘맥시멈 크루’ 실제 영화 주연으로 나서다!

‘맥시멈 크루’ 는 2003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 준우승, 2006년 프랑스 ‘배틀 올림픽 툴루즈’, 캐나다 ‘더 배틀’ 퍼포먼스 부문과 배틀 부문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세계 최정상급 비보이팀으로 한국 최초로 음반을 발매한 비보이팀이다.

이미 국내를 넘어서 아시아, 유럽 등 세계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그들이지만 ‘도전’이라는 단어에 중독 되어있던 그들은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다른 분야를 도전하고 싶었다.”며 힙합 가수로 활동하다 마침내 영화 속 주연으로 나선다.

<올웨이스 비보이>가 다른 비보이 영화와 다른점은 각박한 현실에 쫓기며 오로지 꿈과 열정을 가진 비보이들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상과 몸으로 싸워 스스로를 빛내는 맥시멈 크루의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며 영화를 완성해낸 권우탁 감독의 열정 또한 도전과 모험을 즐길 줄 아는 또다른 맥시멈 크루였다.

비보이와 발레리나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을 생각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다!


한국 비보이들이 전세계 주요 대회를 석권하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비보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CF에 비보이들이 등장하고 드라마, 뮤지컬 등 마이너리티 문화에서 주류 문화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비보이는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하류 문화이고 발레는 하이클래스 문화로 인식되어 있다.

권우탁 감독은 6.25 전쟁 당시 북한에 납북되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어머님께 듣고 자라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아 이번 영화에서 비보이와 발레를 통해 한국의 분단 현실을 영화 속에 녹여 내었다. 그는 “발레와 비보이는 완벽한 대칭이다. 발레는 북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룰이 규칙적이고 항상 변화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비보이는 남한이다. 변화하고 모든 것을 흡수하며 믹스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발레와 비보이를 통해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을 담아냈다.

2008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아메리카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2008 로스엔젤레스 VC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그리고 APA TOP 10 선정


<올웨이스 비보이>는 2008년 26회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카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2008년 제 24회 로스엔젤레스 VC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카 영화제는 매년 3월 미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인들과 관련된 작품을 선보이는 영화제로 올해 2009년에는 <멋진하루>가 개막작으로, <민둥산>이 폐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추격자>가 초청되어 상영되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 UCLA 내 APA(Asia Pacific Arts)에서 매년 연말마다 TOP10을 발표하는데 지난 2008년 APA TOP10에 <올웨이스 비보이>가 선정되었다. 당시 <식스센스>, <빌리지> 등을 연출한 엠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더 폴:오디어스 환상의 문>, <더 셀> 등의 타르셈 싱 감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권우탁 감독은 “아직 너무 부족한게 많은데, 유명 감독들의 영화와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어 감사할뿐이다.” 라고 전했다.

재미교포 출신 권우탁 감독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비보이 & 힙합 영화를 만들다.


재미교포 출신 권우탁 감독은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살면서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를 늘 지나쳐 다녔다. 조지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유명 감독들의 영화 포스터들이 스튜디오 앞에 걸려있는 걸 보며 언젠간 나도 영화를 만들수 있을까라는 환상을 가졌다. 그때가 다섯살이었다고 한다.

대학교 진학 후 연기공부를 하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예일대의드라마 스쿨에 들어가 시나리오도 쓰고 많은 영화들을 보며 꿈을 키우던 중 우연히 한국 비보이들이 나오는 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한국 비보이들의 실력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비보이 춤을 배우게 되었고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후 한국에 와 비보이 수업을 듣게 된 권우탁 감독은 비보이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재 비보이 ‘갬블러 크루’ 소속의 오세빈이란 친구를 만나게 된다.

오세빈을 통해 ‘갬블러 크루’와 ‘맥시멈 크루’ 소속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나간다. 감독은 자신이 우연히 본 비보이 비디오를 계기로 출발한만큼 비보이들의 실생활 모습과 배틀 대회의 치열한 모습들. 그리고 현재 처해 있는 국내 비보이 팀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비전문 배우, 비전문 스텝과 힘겨웠던 3년간의 동고동락

비보이에 관련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권우탁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 후 제작비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 한국의 비보이가 세계적으로 이미 최고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한다라는 것에 대해 큰 자신감이 있었다. 대박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투자사들을 찾아다니며 시나리오를 보여줬지만 비보이와 발레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후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결국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 당시의 투자는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투자를 받아 마침내 제작에 들어갈수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맥시멈 크루’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어 보자 제안했다. 처음엔 자신들에게 그런 제의를 하자 믿지 못했던 ‘맥시멈 크루’는 결국 참여하게 되었고 자기들의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였기에 정말 열심히 했다. 대부분의 비보이 영화는 댄스 위주의 신나는 영화들이나 비보이들 삶을 보여주는 영화는 없었다.

촬영을 위해 스텝들을 모으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영화관련 사이트에 스텝인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었지만 대부분 현장 경험이 적었지만 자신과 같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주로 뽑았고 많은 이야기를 서로 해가며 시작해 나갔다. 한국말을 거의 못했던 권우탁 감독에게는 의사소통도 큰 문제였다. 비전문 배우, 비전문 스텝 그리고 연출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던 감독에게 <올웨이스 비보이>는 모험 그 자체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조감독, 프로듀서가 없어 감독이 뭐든 나서서 역할을 해야했던 것이다. <올웨이스 비보이>의 첫 장면이 지하철역 안에서의 촬영이었는데 스텝들이 일반인들을 통제하는데 감독까지 직접 나서서 통제를 하며 촬영을 했어야 했던 상황과 배틀대회 장면은 보조출연자를 약 3백명 정도를 모아놓고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크레인이 고장난 것이었다.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씬이고 중요한데 장소를 빌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결국 4시간동안 고쳐 겨우 촬영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일어나 당황스러웠고 힘들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는 권우탁 감독은 다시올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배워가며 열심히 했고 촬영감독과 편집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재미 교포 감독 내 몸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권우탁 감독은 재미교포 출신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왔지만 부모님이 자란 한국과 납북되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났고 통일이 되면 죽어도 좋다는 말을 내뱉을 만큼 고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보였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다른 나라의 지배나 억압 속에 살며 피해를 받았는데 아직도 여전히 한국은 강국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마치 이혼한 가족처럼 나라가 갈라져 있는데 북한과 한국이 통일이 되면 미래가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그럼 더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늘 생각했다.

촬영 마지막날 22회차의 촬영을 모두 끝낸 권우탁 감독은 스텝들과의 뒷풀이 자리에서 몰래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 생각에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 영화 잘 만들었죠?” 라고.. 마음 속으로 묻기도 했다고한다.

<올웨이스 비보이>를 통해 흥행보다도 지성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는 그는 국가에서 비보이들을 상품화 시키는데 유력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해 해줄수 있는 실직적이고 도움을 주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감독 출신이 아닌 재미교포 출신의 감독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TIP: 대한민국을 알린 세계 최고의 비보이는 누가 있는가?
1997년 익스프레션을 비롯해 ‘피플크루’ 등 1세대로 출발한 비보이는 지금 새로은 한류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익스프레션’, ‘갬블러’, ‘라스트포원’ ‘맥시멈 크루’ 등은 세계 비보이 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독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비보이 강국을 제치고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의 비보이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심지어 한국 비보이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내한하는 외국 비보이가 늘고 있다.

끊임없는 거리 공연은 물론 퍼포먼스 공연, 온라인 게임, 드라마, CF까지 섭렵한 그들의 파워는 앞으로도 줄줄이 기획되고 있는 다양한 비보이 공연 라인업에서도 느껴진다.
하지만 비보이들의 현실은 쉽지 많은 않다. 누구나 접하고 싶고 즐기길 원하지만 아직은 공연 문화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건 사실이다. 또한 스폰서 기업이 있거나 개런티를 받는 비보이 A급 팀은 고작 10개 내외다. 오로지 꿈과 열정을 쫓는 비보이들에게 경제적 궁핍, 사회적 멸시, 육체적 한계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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