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을 기다렸던 이유는 톰 포드가 연출한 영화의 원작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순전히 톰 포드를 향한 팬심으로 이 책을 기다렸다는 거다. 톰 포드는 패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남자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완벽할 정도로 잘생긴 나머지 벗겨진 머리마저 귀티나는 이 남자는 90년대 구치(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다. 나는 순전히 톰 포드의 이름에 현혹되어 50만원이 넘는 안경테를 구입한 적도 있다. 후회없다. 그가 디자인한 안경을 쓰는 순간 좀더 섹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톰 포드 플라시보 효과라고나 할까.
구치를 뛰쳐나온 톰 포드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연하더니 결국 영화를 감독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원작을 토대로 한 <싱글맨>이다. 패션 한량의 유아론적인 예술놀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주연을 맡은 콜린 퍼스는 남우주연상을 가져갔다. <싱글맨>의 예고편을 보노라면 숨이 턱턱 막힌다. 주인공들의 안경과 커프스 링크 하나까지 세밀하게 디자인한 듯한 극단적인 유미주의 때문이다. <싱글맨>의 예고편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원작을 읽는 데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더욱 말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건 톰 포드가 이셔우드의 원작에서 불멸의 아름다움을 보았음이 틀림없다는 거다.
<싱글맨>은 사고로 애인을 잃은 예순 게이 대학교수의 하루를 따르는 책이다.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싱글맨>을 쓴 것은 1964년이다. 이셔우드는 당시 60살이었다. 젊음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할 나이였다. 책의 주인공인 조지는 이셔우드의 환영에 다름 아니다. 노년의 대학 교수는 사라진 열정에 대한 그리움, 불공정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공정한 척 애쓰는 세상에 대한 환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욕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싱글맨>은 종종 오스카 와일드의 주인공이 쓴 제임스 조이스 책처럼 묵직하다. 패셔너블한 척 독자에게 애교 떠는 퀴어소설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책은 결코 (아마도 톰 포드를 반하게 만들었을) 섹시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챕터. 영화에서는 <어바웃 어 보이>와 <스킨스>의 니콜라스 홀트가 연기하는, 19살 제자와 맨몸으로 바닷속으로 걸어들어간 조지는 유혹적이고 색정광적인 대화를 이어나간 뒤 또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톰 포드의 영화가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모르겠다. 이셔우드처럼 가슴을 치지는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