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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이시다와 아베의 영혼 <감각의 제국2: 사다의 사랑>
김성훈 2009-12-09

synopsis 1936년 5월18일 도쿄 아라가와구의 요정 마사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것도 성기가 절단된 채로 말이다. 피해자는 요리점 요시다야의 주인인 이시다 키치조(나카야마 가즈야), 가해자는 요시다야의 전 종업원인 아베 사다(스기모토 아야). 이시다는 아내의 눈을 피해 아베와 불륜을 즐기던 중 처참한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당시 일본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린 ‘아베 사다’ 사건의 전말이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2008년, 이시다와 아베의 영혼이 부활했다. 누드사진작가인 이시다가 어느 해안에서 누드촬영을 하다 우연히 오오미야(우치다 유야)라는 노신사를 만난다. 노신사는 이시다에게 자신의 아내인 사다의 누드촬영을 부탁한다.

이미 아베 사다 사건을 그린 거장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성기노출, 실제 정사장면, 실제 사건의 영화화 등으로 <감각의 제국>은 일본에서 상영이 금지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한 치정극 이상의, 아니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두 남녀의 지칠 줄 모르는 섹스를 통해 당시 시대배경이었던 제국주의를 허무하게 만든 감독의 정치적 태도 때문이다. 전쟁보다 섹스가 더 중요하다는 듯 천황의 군대가 행진하는 동안에도 이시다와 아베가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일본사회의 공허한 분위기와 잘 맞물리기까지 했다.

<감각의 제국2: 사다의 사랑>의 모치즈키 로쿠로 감독 역시 이 점에 신경 쓴 듯하다. 70년 만에 부활한 이시다와 아베에게 ‘초월적인 존재’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질문을 던진다. “그토록 서로를 탐닉해서 남는 건 뭐지? 섹스가 국가보다 더 중요했나?” 이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은 이렇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 것. 좋아하는 여자의 손에 죽는 것만큼 극락왕생하는 건 없지.”(이시다) “탐닉했던 건 아냐. 그와 함께 놀고 싶었을 뿐.”(아베) 이같은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감독은 당시 인물의 행동과 심리, 그리고 사회상을 끄집어내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미 했던 얘기이므로 지루하고,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라 매력이 덜하다. 때문에 1936년 일본 청년 장교들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2·26사건, 두 사람의 섹스를 바라보는 노신사 오오미야의 환멸어린 시선, 종족번식과 개인 쾌락이라는 이분법적인 섹스 논쟁 등 각각의 장면들이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마치 주제를 설정해놓고 그와 관련된 여러 장치를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랄까. 감독의 순진한 연출이 아쉬운 작품이다. 2009년 광주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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