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 지수 ★★★★★ (무서운) 인간 안도 다다오 지수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때 내 꿈은 건축가였다. 더 부끄러운 이야기는, 꿈을 꾸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건축가의 꿈을 꿨다는 거다. 행정학과를 졸업해 영화잡지에 들어간 20대 후반의 인생 여정에서 건축가의 꿈은 자기 직전 떠올려보는 로또 당첨의 망상과 다를 바가 없다. 각설하고, 여전히 나는 건축이 영화만큼 중요한 종합예술의 형태라고 믿는다. 프랭크 게리를 보면 루이스 브뉘엘이 떠오르고, 오스카 니마이어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중 누가 더 위대한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안도 다다오와 오즈 야스지로 중 누굴 선택할지도 묻지 마시라. 대답할 수 없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오랫동안 사랑해온 건축가 중 한명이다. 그에 관련된 책은 꽤 많이 출간됐다. 도쿄대 대학원에서의 강의를 토대로 쓰여진 <연전연패>와 마쓰바 가즈키요와 함께 쓴 <안도와 함께한 건축여행> 같은 책들 말이다. 그런데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표지를 보는 순간 넋이 나갔다. 아라키 노부요시가 찍은 안도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라는 문구가 정말 무시무시했다. 첫 챕터를 보는 순간 겁에 질렸다. 안도의 아틀리에는 건물을 드나드는 스탭들이 반드시 그를 거쳐 지나가야 하는 장소다. 스탭들은 이메일, 팩스, 개인용 전화도 금지다. 안도가 말한다. “이런 나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스탭들도 꽤 고단할 것임에 틀림없다.” 일을 대하는 안도의 매서운 경건함은 회색 콘크리트로 지어올린 그의 집들을 쏙 빼닮았다.
고희의 예술가가 생애 마지막으로 쓴 이 자서전은 안도 다다오의 모든 것이다. 유명한 ‘빛의 교회’나 ‘로코 집합주택’ 같은 대표작을 건설한 이야기(자본, 공무원, 건축적인 불가능함과의 투쟁을 보노라면 그는 확실히 일본 건축의 체 게바라 같은 인간이었지 싶다)도 재미있지만 프로복서로 출발해 독학으로 건축가가 된 이른 삶의 여정도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들고 내년 즈음에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찾아가는 순례라도 해볼까 싶다. 내가 직접 눈으로 목도한 안도의 작품은 (그의 가장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오모테산도 힐스 쇼핑몰뿐이다. 이제는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해변의 집 같은 걸 보고 싶다. 물론 거기 살라고 한다면 자신없다. 그가 지은 콘크리트 집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살기엔 좀 불편해 보인다. 안도 역시 책에서 말한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 이 대목을 읽다가 다시 표지를 봤다. 완강한 각오로 가득한 예술가/투쟁가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