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산업협회는 DVD방과 찜질방, 공공기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저작권 사용료를 징수하고 있다.
“저작권료 도둑질 백태 고발!”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실이 낸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이 자료에서 진성호 의원은 “12개의 저작권집중관리단체들 중 6개 단체가 횡령 또는 공금유용 등 회계부정으로 쓴 저작권료가 40여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로부터 제출받은 ‘2006~2009년 저작권집중관리단체별 업무점검 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였다. 진성호 의원이 강력하게 지적한 단체는 한국음악실연자협회, 한국음원제작자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였다. 그런데 이들 6개 단체 중에는 한국영상산업협회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영상산업협회는 지난 1999년 영상제작자(배급)의 권익보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다. 2005년 11월부터는 문화부로부터 저작권 신탁관리업을 허가받아 비디오테이프, VCD , DVD의 저작권을 관리했다. 극장이나 비디오물소극장을 제외하고 비디오방이나, 찜질방, 기타 공공기관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의 사용료를 징수해 저작권자에게 분배하는 것이 이 협회의 역할이다. 2009년 7월 기준으로 52개사 1351개 저작물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다.
진성호 의원실은 “한국영상산업협회가 2006년 3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3억6500만원의 사용료를 징수하면서, 이중 관리수수료 4억7800만원과 2008년 3월 분배금 6100만원을 제외한 8억2600만원이 신탁회계로 회원들에게 분배되어야 하나 2009년 6월 말 7억6800만원이 전용되어 협회의 일반경비로 쓰였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한국영상산업협회의 회계 및 자금관리 부정사례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근 일부 영화인들이 문제제기에 나선 상황이다. 한국영상산업협회가 지난 3년간 사용료를 전용할 때까지 감시기관인 문화부는 몰랐던 것인가, 알았다면 왜 계속 신탁관리업무를 맡기고 있는가란 지적이다.
지적과 개선명령으로만 일관
<씨네21>은 진성호 의원실로부터 ‘한국영상산업협회 업무점검 결과 및 개선명령 보고서’를 입수했다. 문화부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영상산업협회의 신탁관련업무와 예산 및 회계업무를 점검한 내용이다. 자료에 따르면, 문화부는 지난 3년간 지적과 개선명령을 반복했다. 2007년 점검 때는 524만원의 업무추진비가 증빙자료없이 집행된 내역을 발견해 환수조치했다. 2008년에는 권리자에게 분배해야 할 사용료의 일부를 총회의결 및 권리자 동의없이 협회 경상비로 임의집행한 사실을 파악했다. 협회자체예산과 권리자 사용료가 구분되지 않은 채 같은 일반회계로 관리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확인됐다. 2009년 업무점검 때는 앞서 진성호 의원실이 밝힌 것처럼 “3년간 7억6800만원을 전용했다”고 지적했다.
의아한 부분은 이에 대한 문화부의 개선명령 내용이다. 2008년에는 임의 집행한 일부 사용료에 대해서는 권리자의 동의 및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투자비용으로 인정하거나, 분배받을 금액을 포기하겠다는 동의서다. 사용료를 반납받아 권리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당시 한국영상산업협회는 52개 회원사 중 16개 회원사에만 동의서를 받았는데, 이들은 분배할 금액이 없거나 적은 회원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3년 동안 7억6800만원을 전용한 사실을 확인한 2009년 업무점검 때도 문화부의 개선명령은 미온적이다. “신탁사용료 협회 경상비 전용집행 즉시 중지”, “지속적인 신탁사용료 전용집행으로 협회의 신탁관리 업무 파행이 예상되므로 협회의 운영과 신탁관리업무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상화 계획을 2009년 10월까지 제출할 것.” 여기에 임의집행한 사용료에 대해 신탁회원사의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던 2008년의 개선명령이 반복됐고, 신탁회원사별로 파악하여 분배받아야 할 금액을 정확히 통지하라는 명령이 추가됐다. 물론 이때는 “시정사항 미이행, 이행계획 및 정상화계획이 실현가능성이 없을 시, 저작권법 제109조 제1항 제4호에 근거한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겠다는 사항이 포함됐다. 이전보다는 강력한 경고지만, 사실상 한번 더 지켜보겠다는 식의 개선명령인 것이다. 문화부가 한국영상산업협회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을 살 만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 저작권산업과 이명진 주무관은 “진성호 의원실의 보도자료에는 약간의 곡해가 있다”고 말한다. “영상산업협회가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다. 징수한 사용료를 임의로 집행했다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필요한 절차를 보완했다.” 하지만 임의 집행한 사용료를 환수해 저작권자에게 돌려줘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는 문화부로서도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주인인 회원사들의 입장에서는 영상산업협회가 자기네들의 모임이라는 정서가 있다. 개별 금액으로 따졌을 때, 몇 백만원에서 몇 십만원인데 굳이 받느니 협회예산으로 기부하려는 태도가 있는 것이다. 문화부로서는 회원사들간의 그런 결정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신탁관리단체로서 사용료를 명확히 집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개별 회원사들의 동의서를 요청한 것이다.”
새로운 저작권 관리정책 필요한 상황
그렇다면 2008년에 임의집행내역을 확인한 것에 이어 2009년에 파악한 “7억6800만원 전용”에 대해서도 사실상 같은 개선명령을 내린 이유는 뭘까. 문화부 스스로 “지속적인 신탁사용료 전용집행으로 협회의 신탁관리 업무 파행이 예상”된다면 신탁관리단체로서의 한국영상산업협회가 가진 역할에 대해서는 재고해야 되는 게 아닐까. 문화부는 “어떤 해법이 저작권 권리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상산업협회가 그동안 전국적으로 저작권을 단속해온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신탁관리허가를 다른 단체로 넘긴다면 이때는 회원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배급사들한테 영상산업협회는 자신들의 권리를 단속해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신뢰가 있는 것 같다. 신탁허가를 중지시킬 경우, 현재 남아 있는 DVD방과 찜질방 등의 저작권 사용을 단속할 주체가 사라지는 건데, 그건 권리자들에게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문화부는 관람환경의 변화 또한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공연권을 관리할 수 있는 DVD방 등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에서 존속이 어려운 영상산업협회로서는 회원사들에게 예산을 부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영상산업협회의 한 회원사 관계자는 “영상산업협회가 초기투자비용 때문에 사용료 분배를 유보해 달라는 안건을 총회에서 내놓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안건에 반대했지만 결국 통과되더라. 우리로서는 사용료를 안 받거나 아직 못 받는 게 아니라 유보된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화부 담당자와 회원사 관계자의 말대로 영상산업협회가 횡령을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을 관리해 권리자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신탁관리단체로서의 기능에서 영상산업협회의 역할은 재고해야 할 여지가 있다. DVD방이나 찜질방 업주들이 합법적으로 낸 저작권 사용료이자 일부 회원사들에게는 필요한 돈이 총회와 동의서라는 편의적인 절차를 통해 사실상 협회비로 쓰이는 상황이다. 관람환경의 변화가 필연적이라면, 그에 맞는 저작권관리정책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지난 10월, 영상산업협회로부터 받은 정상화 계획안을 검토 중인 문화부는 2010년 초까지는 영상산업협회의 기능수행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 3년간 문화부가 내린 개선명령과 비교할 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