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다큐멘터리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8년 전 알고 지내는 방송사 시사프로 PD에게 아이디어를 내민 적이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 지역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관해서였다. 관계자들의 증언과 미국 자료를 통해 진상의 얼개가 드러났지만, 남은 의혹이 많았다. 취재에 참여했다가 완결을 짓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방송으로 보도되면 반향이 더 클 것 같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68년 2월12일 베트남 중부지방의 한 도로를 순찰하던 한국군 해병대 중대가 몇발의 총격을 당한다. 한명이 부상을 입는다. 해병대는 즉각 인근 마을을 수색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을에 불이 나고 아이와 부녀자 등 79여명의 민간인들이 주검으로 발견된다. 당시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중앙정보부의 조사로까지 이어졌다. 9년 전, 작전에 참여했던 장교들을 취재했다. 중대장과 1, 2, 3소대장 모두의 증언을 들었다. 그들은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 중대가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살을 명령했다거나 비슷한 광경을 보았다는 이는 없었다. 소대장들은 모두 “우리 소대원들은 연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였다. 마치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피어슨과 알렉스가 “우리 둘 중 한명이 죽였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이라크, 제2의 베트남’이라는 표현은 진부하다. 그럼에도 이번호 특집에서 다룬 작품 중 하나인 <베틀 포 하디타>의 내용을 읽으며 베트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4년 전 이라크 하디타 지역에서 벌어진 미군의 학살사건은 지상군이 전쟁범죄에 휘말리는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지녔다. 누군가로부터의 저격, 부상 또는 사망, 군인들의 분노, 마을 진입, 살려달라고 비는 민간인, 무차별 학살…. 앞에서 언급한 베트남에서의 전개과정과 거의 같았다. 나중에 미 국방부 문서를 통해 발굴된 시신 사진엔 가슴이 잘린 채 숨진 스무살 여성도 있었다. 왜 그토록 잔인했을까. 소대장 중 한명은 “마을에 들어가니 긴장과 공포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건 당시 헌병대 조사계장이었다는 이는 보도가 나간 뒤 전화를 걸어와 “베트콩의 소행이라고 거짓 조서를 꾸민 게 늘 마음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20대인 아들이 어린 나이에 암으로 죽었는데, 그때의 죗값인 것 같아 괴롭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른 참전자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내가 죽였다”는 고백은 끝내 없었다.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전쟁 스릴러물’을 접하는 기분이었다. 한국군도 미군을 따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지만, 처절한 기억은 대부분 베트남에서 정지돼 있다. 시나리오를 찾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거 영화로 한번 만들어보시라고(사건이 벌어진 곳은 황석영 소설 <무기의 그늘>의 무대인 다낭 바로 위 ‘퐁니·퐁넛’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