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영화시장 전망은 어떤가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자주 묻고 듣게 되는 질문이다. 대개의 답은 ‘확실치는 않아도 올해보다 부진할 것 같다’는 쪽이다. 물론 그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CGV 이상규 팀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정답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부분 관계자는 2009년 한국영화가 암흑기를 맞이할 것이라 전망했지만, 올 한국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나. 영화가 개봉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듯 내년 영화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올해 한국영화계는 예상보다 알찬 결실을 맺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10월 말까지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과속스캔들> <쌍화점>으로 시작해 올해 초 <워낭소리>와 <7급 공무원>을 거쳐 <거북이 달린다>와 <국가대표>까지 흥행행진이 이어진 덕분이다. 그리고 3년 만에 1천만 관객을 넘긴 <해운대>까지 있었으니, 최소한 흥행 면에서 한국영화는 건강한 한해를 보낸 셈이다. 7월부터 인상된 극장요금 또한 한국영화의 체질을 강화한 숨은 요소다.
문제는 투자다. 여러 성과에도 아직 투자환경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고 있다. 기존 ‘빅3’의 두축인 쇼박스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평년 수준의 투자’를 펼칠 계획이고 여러 펀드 또한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려는 경향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2010년에도 CJ엔터테인먼트가 독주하는 분위기가 지속될 전망이다. 변수는 있다. “지금 투자 여력이 있는 곳이라면 KT와 SK텔레콤뿐”이라는 한 배급사 관계자의 말처럼, 공룡 통신자본이 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한다면 시장 판도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동안 ‘가능성’만 보여줘온 통신자본은 최근 들어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치고나가는 쪽은 KT다. KT의 자회사 싸이더스FNH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올해 중반 차승재, 김미희 공동대표 체제를 허물고 최평호 대표 중심으로 새판을 짠 싸이더스FNH는 한동안 쟁여놓기만 했던 자본을 서서히 풀어놓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필두로 투자작을 하나둘 결정 중이며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움직일 때가 됐다”는 최평호 대표는 “내년 초쯤이면 라인업이 완성될 것 같다”고 말한다. 자체 제작 중심에서 외부 작품에 대한 투자·배급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새판에 걸맞게 회사명도 바꿀 계획이다. SK텔레콤 또한 이전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홍길동의 후예>에 이어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확보해놓은 SK는 좀더 공격적인 투자를 고민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홍길동의 후예>의 흥행성적과 연말 인사이동이 변수겠지만, “KT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두 공룡의 용틀임은 영화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당장 영화시장의 다양화나 체질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할지는 몰라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물론 통신자본이 계속 지지부진하더라도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2010년의 영화시장을 놓고 비관만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이 예측 불가한 역동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