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소설과 (일본판) 드라마, 그리고 (한국판) 영화 중 가장 나은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가 ‘더 나쁜’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일 것은 확실하다. 재미있게도 <백야행> 드라마와 영화의 딜레마는 여타 소설을 극화한 경우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할 때는 글로 설명 가능했던 잔가지를 쳐내고 영상으로 효과적인 방식의 구성이 되도록 이야기를 뒤집어엎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화를 결심하게 만들었던 촘촘한 이야기는 넝마가 되곤 한다. <백야행>은 그 반대의 경우. 소설에 없는 것을 드라마와 영화가 채워넣고자 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가장 결정적인 어떤 것을. 그들의 범죄행각은 행동을 그리기만 해서 이해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원하는 대상이면 ‘누구라도’ 강간하고 살해하고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유령처럼 존재하는 일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한평생 누군가를 위해 시간, 강간, 살인, 자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 그 이유를 이해받으려 억지를 쓰지 않은 것과 달리, 드라마와 영화는 이해하고 이해받고자 과감한 각색을 했다.
소설 <백야행>의 미스터리에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건부와 해결부로 나뉘는 미스터리극과 달리 여기에는 사건의 연쇄는 있지만 해결이 없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비극의 연쇄 중 두 남녀가 마주치는 대목을 잘라놓은 게 소설 <백야행>이다.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비극이 있었고, 소설이 끝난 뒤에도 여주인공의 백야행은 계속될 것이다. 완전범죄는 풀이되지 않고, 악인은 처벌받지 않으며, 사랑은 보답받지 못한다. 그녀의 악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남자의 악행이 왜 시작되었는지,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무려 14년(원작 소설에서는 19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소설은 설명하지 않는다. 드라마 <백야행>은 눈물과 정액으로 질척거리는 이야기로 둔갑했다. 류지(한국판의 요한)는 자꾸 유키호(한국판의 미호)의 변심을 의심하고 눈물로 호소하며, 유키호는 그런 류지를 말로 눈물로 때론 몸으로 설득한다. 십수년의 세월 동안 둘이 의심하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된다. 인간이 극한의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에 대한 고심의 결과일 것이다. 류지 아버지의 전당포에서 일하던 마쓰우라(류지 어머니의 정부이기도 하다)의 존재는 드라마에서 특히 강조되는데, 와타베 아쓰로(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주인공이었던 배우)의 존재감에 걸맞게 류지에게 범죄자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 격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냉혈한이 아닌, 피와 살이 흐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괴로웠다는 논리를 시종일관 펼쳐간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결말인데, ‘악인은 지옥으로’라는 정의논리를 도입해 뒤에 남은 유키호도 행복할 수는 없었다는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럼에도 희망은 죽지 않는다’는 듯 류지의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다.
드라마의 어려움은 두 남녀의 범죄극을 이해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영화 <백야행>은 드라마보다 설명을 아꼈지만, 역시 멜로가 들러붙었고 대신 인물의 역사를 잘라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들의 어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영화에는 없다. 영화 <백야행>은 소설과 드라마의 적당한 조합이다. 시간제약 면에서 가장 불리했을 핸디캡에도 어떻게든 말이 되게 이야기를 우겨넣느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두 주인공을 추적하는 형사가 왜 그렇게 그 사건에 집착하는지도 마찬가지. 책에서는 그가 그냥 수사를 계속할 뿐으로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끼던 후배의 죽음, 영화에서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집착이라는 사족을 달았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류지/요한의 어머니 역에 원작과 다른 무게감을 주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를 근심하고, 어머니는 아들에 눈물짓는다. 인간다움의 최후의 보루로 모성애를 상정했다. 류지는 아버지를, 유키호는 친모와 양모를 살해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류지 어머니의 외도였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고 밑줄긋는다. 마치 그러면 뭔가 달라진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