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기분이 울적할 때 스스로 내리는 처방전이 있을 것이다. 초콜릿은 가장 오래된, 가장 영험한 처방전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 산책을 하는 사람도 많더라. 일단 집을 나서서 ‘이제, 돌아가자’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걷는다.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가장 공들여 선택한 음악 속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애인을 만나기도 한다. 애인의 효용. 아무때나, 별 이유 없이도 불러내 ‘나를 즐겁게 해 봐’ 하고 요구할 수 있다. 어린왕자는 자기 별에서 의자 위치를 옮겨가며 몇 십번이고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애용한 처방전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소설도 <BBC> 드라마판도 키라 나이틀리의 영화판도 좋아한다. 블로그에 “오늘 <오만과 편견>을 다시 봤는데”라고 쓰면 친구가 댓글로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물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렇기도 했고.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묘사 때문에 좋아하고, 드라마와 영화는 금욕적인 다아시의 표정 때문에 좋아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오만과 편견> 말고도 종종 써먹는 처방전은 D. H. 로렌스의 단편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다. 주인공 마틸다는 서른세살 여자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국가대표급으로 보수적이다. 딸만 둘을 키우게 되자 굳이 양자 삼아 사내아이를 데려다 돌본다. 마틸다는 서른세살, 아버지가 양자 삼아 키운 아이 헤이드리언이 스무살이 된 어느 날. 두딸 중 하나를, 나이 때문에 당연히 둘째딸을 헤이드리언의 짝으로 할 생각이던 마틸다의 아버지는 큰딸과 결혼하겠다는 헤이드리언의 말을 듣는다. 마틸다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나이는 한참 어린데다, 여튼 마음에 들지 않는 헤이드리언과의 결혼을 거부하지만 아버지는 “결혼을 안 하면 유산도 없다”는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헤이드리언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 이면에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마틸다는 몸이 편찮은 아버지를 살피기 위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운 남자의 이마를 짚었는데, 하필 이런저런 이유로 침대에는 헤이드리언이 누워 있었다. 헤이드리언은 잠에서 깨고 마틸다는 정신을 차린다. 고작 이마 한번 만졌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진다. “나도 그게 실수였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남자를 깨워놓으면, 자라고 해서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백낙청 선생님의 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이렇다. “헤이드리언은 낭만적인 구애자가 아님은 물론 신사적인 인간도 아니고 돈문제를 떠나서 마틸다와 결혼만 하면 된다는 ‘순정’조차 안 보이지만, 그렇다고 돈 때문에 마틸다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도 전혀 뜻밖으로 일깨워진 욕망의 정당함을 믿고 그 실현을 위해 물러설 줄 모르는, 하층 출신 특유의 ‘비신사적’ 생명력과 주체성을 지닌 것이다. 마틸다가 아버지의 강압적 요구에 마침내 ‘굴복’하는 것도 사실은 헤이드리언 나름의 순수성을 그녀가 확인한 뒤의 일이다.”
비신사적이고 저돌적인 연하남이 좋아서… 이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십대도 지나고 이십대도 지났지만 여전히 새로운 꿈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가장 뜻밖의 순간에. 가장 깊은 밤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비신사적인 젊은 남자를 건드리는 운명의 손길. 모든 걸 긍정하게 만드는 이상한 밤의 어떤 손길.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라고 하면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은 날 밤에,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