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가 아니다. 알면서도 도의를 어겨야 할 때가 있다. 길게 보면, 도의를 버리는 게 결국 도의가 되기도 한다. 윤종빈 감독은 5년 전 도의를 어겼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군 당국에 사기를 쳤다. 군부대 촬영협조를 요청하며 제출한 ‘선·후임병간의 우정에 관한 시나리오’는 가짜였다. 실제 영화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엔 우정이 아니라 환멸이 등장했다. 육군 당국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흥분했다. (이젠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는 정말로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될 뻔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 영화를 찍으려면 일정한 간섭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호 <씨네21>에 인터뷰가 실린 가네코 슈스케 감독도 그랬다. 그는 <가메라>의 시나리오를 짜며 처음엔 자위대 전투기의 날개가 갸오스의 공격으로 파괴돼 추락하는 설정을 했다가 지웠다. 자위대가 협조를 안 하겠다고 해서다. 대일본제국 자위대 전투기의 굴욕적인 모습은 넣을 수가 없었다. 그는 촬영 중 너무나 아쉬워, 속으로는 전투기가 추락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윤종빈 감독의 경우엔, 군이 방심했다. 그는 당시 무명의 영화과 학생에 불과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감동적으로 본 나로서는, 그의 ‘사기행각’을 뉴스로 접하며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분명히 도의가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군 당국으로선 황당했지만 대중에겐 즐거운 사건이었다. 보수적이고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군 조직의 구멍은 사회적인 명랑지수를 높이면서 ‘명작’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군 당국의 영화촬영 협조는 계속된다. 아니 최근의 움직임은 아주 화끈하다. 4편의 작품이 군의 지원을 기다린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연평해전을 다룬 <아름다운 우리>(가제·감독 곽경택)와 <연평해전>(감독 백운학)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 이야기를 그린 <포화 속으로>(감독 이재한)와 고 신상옥 감독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빨간마후라2>도 추가된다. 전투기와 대형 함대, 그리고 각종 군 물자를 빌려주는 대가는 무엇일까? MB시대에 그것은 ‘남한의 체제우월성 입증’일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연평해전>의 제작발표회 땐 조갑제 선생이 나와 선동적인 연설까지 했다. 그냥 제작발표회가 아니라 ‘제작발표회 및 호국결의대회’였다. ‘방송개혁시민연대’라는 우파단체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감독님들이 도의를 어겼으면 좋겠다. 지원과 후원은 아낌없이 받되, 나중에 지원하고 후원한 쪽이 영화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도록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괜찮은 작품이거나 최소한 문제작일 거다. 반대로 기립박수를 받는다면 안 봐도 비디오다. 5년 전의 윤종빈 감독 같은 패기는 언감생심이다. 최소한 스폰서의 기대에 지나치게 부응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