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드라마에는 마력이 있다. 화면 속, 움직이는 모든 대상이 내뱉는 무수한 말, 그 말 모두를 끄집어내 하나둘 밑줄 긋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내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준영의 공격적인 표현에, 사랑을 말하기보다 감추기 급급한 지오의 방어적인 대사에, 사랑의 실체는 아낌없이 파헤쳐지고 해부된다. 때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또 때로 아리기도 하지만, 이건 기쁨과 슬픔 어느 하나로 규정해선 안될 사랑 그 자체의 감정이다. 노희경의 대사는 드라마 속 인물들을 통해 사랑의 언어로 자리하고, 그 언어는 고이 적어두어야 할 글이 되어 팬들의 기억에 남는다. 민망한 시청률을 버텨내는 노희경의 진득한 비법은 이 마력의 말이 모인 결과다.
노희경이 그 기록을 드라마 팬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작가가 드라마를 위해 제작진에만 내놓는 비밀 레시피, <그들이 사는 세상>의 대본집을 두권의 책으로 엮였다. 16부의 드라마가, 16부의 언어들이 마침표, 쉼표, 말줄임표 하나 고쳐지지 않고 오롯이 노희경의 대본 그대로다. 어쩌면 노희경 자신의 감정을 산문집으로 엮어냈던 때보다 더 수줍은 고백일지 모른다. 드라마는 ‘글보다 말, 말보다 연출력과 연기력’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본집 출판을 망설였다는 작가의 겸손한 변명이 뒤따르지만, 그가 써내려간 대사가 사랑을 하는 모든 이에게 유통기간 없는 필독서가 되리란 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