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모어 레너드는 흑백 카메라처럼 묘사하고 폭죽놀이처럼 대화를 끌어간다. 범죄물, 스릴러, 서스펜스. 뭐라고 부르건, 엘모어 레너드는 언제나 아드레날린이 책장을 타고 흐르는 소설을 쓰면서도 유머와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가 욕을 너무 많이 쓰고 범죄자와 창녀들에 대해 너무 긍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설정만 읽으면 <블랙 달리아> <LA 컨피덴셜>의 제임스 엘로이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는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엘모어 레너드는 웃길 줄 아는 남자다. 그는 자기 주인공이 시가를 피워 물고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 대신, 농담하고 섹스하고 총질하고 잘난 척하고 무사히 살아남아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겟 쇼티>와 <재키 브라운>, 그리고 조지 클루니 주연의 <표적>이 영화로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을 충실히 영화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악당과 약간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핫 키드>는 머리 나쁜 악당, 범죄자처럼 생각하는 보안관, 매력적이지만 나쁜 남자하고만 사랑에 빠지는 재주가 있는 창녀들의 이야기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0년대의 미국 오클라호마. 얼마 전 개봉한 마이클 만의 영화 <퍼블릭 에너미>를 연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방 보안관 대리 칼 웹스터는 자아도취적인 남자다. 외모로나 말로나 멋내기를 좋아하는 칼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주저 않고, 그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일 줄 안다. 악당 잭은 어린 여동생을 물에 빠뜨려 반신불수로 만든 일을 시작으로 강간, 살인, 심지어 아버지 애인 납치시도 등 백만장자인 아버지의 가장 어두운 그늘로 살아간다. 칼은 잭을 체포하려고 하고, 잭은 칼을 죽이려고 한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려는 토니는 그들 주변을 밀착취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칼의 여자와 잭의 여자, 이들의 아버지, 1930년대에 활약했던 수많은 악당들이 지뢰 터트리듯 사건을 일으킨다.
엘모어 레너드는 악당 잭과 칼이 맞대결을 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똑딱거리는 시계 초침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덕분에 조바심은 배가된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잔에 나뭇잎을 띄우고 있는 레너드의 침착함은 독자 입장에서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 또한, <재키 브라운>과 <표적>을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의 책에서 여자들은 아름다운 시체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욕망에 솔직하고 행동력있는,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여자들을 만나는 재미를 기대해도 좋다는 말이다. 미국 소설가들이 소설 작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대화문의 모범으로 손꼽는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며 활동적인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