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친노좌파? 농담 같은 영화 비판을 접했다. 얼마 전 어느 MB스러운 주간지에 실린 글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MB를 비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정호(이순재)는 DJ를 암시하고, 차지욱(장동건)과 한경자(고두심)는 노무현의 분신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든 자유다. 문제는 이 작품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과 인간미를 찬양하면서 친노좌파적인 정치선동을 한다는 거였는데, 왠지 공격이라기보다는 칭찬처럼 들렸다. 이 영화가 그렇게 날이 섰다는 말인가.
오히려 맨송맨송해서 탈이다. 감독 장진의 ‘무언가 한방’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20자평은 함축적이다. “시작이 소박해서 좋지만, 끝까지 소박해서 아쉽다.” 반전은 없었다. 장진식 현실풍자는 별로 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령 10년 전에 만들어진 <간첩 리철진>을 돌이켜본다. 남파 공작원이 택시 강도를 당한다는 설정은 황당하면서도 결코 황당하지 않았다. 그 기막힌 상상력은 리얼한 것이었다. 나중에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작금을 몽땅 사기당한 간첩도 있다지 않은가. 웃기면서도 현실의 옆구리를 찌르던 그의 페이소스가 그립다.
이번호 오픈칼럼에서 정한석 기자는 허경영을 말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세 대통령이 죄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아닌 허경영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너무 이상적이라는 이야기다. 동의하시는가? 영화읽기를 쓴 평론가 황진미씨의 비판 지점은 또 다르다. “영화가 표방하는 ‘꿈의 대통령’은 반민주적 엘리트 과두제와 반여성주의, 그리고 MB가 대통령인 현실정치의 암흑지점을 그대로 공유한다.” 정치적으로도 설정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다. 이 엄격한 비평은 캐릭터의 전형성에 대한 강박으로 역비판받을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판단을 해보시기 바란다.
영화적 성패와 관계없이 나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며 차지욱에 필이 꽂혔다. 그가 잘생겨서도, 초엘리트여서도 아니다. 단지 40대여서다. 한국에서 40대 대통령은 이루지 못한 꿈이다. 각각 44살과 48살에 최고권력을 움켜쥔 박정희와 전두환이 있지만, 쿠데타였다. 박정희와 동갑인 J. F. 케네디는 역시 44살에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그를 포함해 미국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중엔 40대가 많았다. 클린턴과 오바마는 모두 47살에 대통령이 됐다. 정치권의 물망에 오른 ‘할아버지’ 차기 주자들에 신물이 나서인지, 차지욱보다 더 정치를 잘할 40대 정치인의 실명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박스오피스 1위 등극을 축하하며, 때마침 차지욱의 로맨스가 영화 안팎(!)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기념하며, 관객에게 ‘40대 대통령’이라는 화두가 각인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