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목욕하던 아이가 실수인지 의도인지 나를 때렸다. 그래놓고는 “내가 때린 게 아니라 손이 때렸다”고 우긴다. 뭐 ‘시껍’할 일은 아니다. 그대로 돌려주면 될 뿐. 찰싹. 니 엉덩이 아프냐? 내 손바닥도 아프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혹시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탐독하신 게 아닌가 싶다. 헌법재판소의 언론관련법 판결은 한마디로 ‘국회 처리 과정은 위법이나 무효라고는 말 못한다’로 요약된다. 이런 아방가르드한 결론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셨을까. 이 소식을 듣자마자 헌법재판소 마당에 있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위조지폐는 맞지만 유통은 가능하다’고 하는 꼴”이라고 일갈했다(이분 진짜 천재적 언어 감각의 소유자).
사실 이런 유의 ‘초현실적 은유’는 이 정부 들어 곳곳에서 넘친다.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나를 뽑아줬지만 국민은 아니다’로 일관하시니, ‘일자리는 없지만 일을 열심히 하라’ 정도는 약과일 것이다.
‘약속은 했지만 지킬 것은 아니다’(세종시), ‘혜택은 있으나 특혜는 아니다’(종합편성채널), ‘대운하는 포기했지만 삽질은 계속 한다’(4대강), ‘녹지는 훼손하나 녹지를 사랑한다’(그린벨트 해제), ‘부자들 세금만 깎아주지만 서민을 위한다’(조세 정책), ‘10대 공약에 들어 있지만 공약이 아니다’(747 경제성장), ‘재산을 내놓지만 관리는 내가 한다’(대통령 300억원 기부), ‘담당 검사에게 전화는 했지만 압력은 아니다’(검찰 총장), ‘기업인에게 용돈을 받았을 뿐 돈받은 건 아니다’(정운찬 총리) ,‘사람이 죽었지만 잘못은 아니다’(용산 참사), ‘밖에서 데려와 앉혔지만 낙하산은 아니다’(각 기관장), ‘파병은 했지만 평화를 수호한다’(아프간 파병), ‘일반고와 다르나 특별하진 않다’(특목고·국제고·자사고 등), ‘당선은 안되어도 진 것은 아니다’(재보선)….
아름다운 우리말이 이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술은 먹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에 버금가는 표현력이다. 이러다 아예 ‘대통령이긴 하지만 국정에는 책임없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순서만 바꿔 그대로 실천하면 될 것이다. 무효라고는 말 못해도 위법이다. 그러니 응당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