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시간에 떠도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인근 일부 학교가 휴교한 탓이다. 동네 어린이집에도 ‘그저 걱정이 돼’ 애를 안 보내는 학부모들이 늘었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내게 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건… 어린이집 휴원이거든. 흐헉.
일반 병원에서도 임상적 판단만으로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할 수 있고, 이 처방전으로 모든 약국에서 약을 구하게 된 건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왜 진작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 거점 병원 지정·운영부터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비축, 검사·치료비 부담, 우선 예방접종자 순서까지 보건 당국은 말 그대로 ‘재난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가령, 4살된 내 딸내미에 앞서 요즘 날씨에도 반팔 입고 돌아다니는 저 중고생들이 먼저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내 딸내미가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보다 우선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말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 접종받느냐는 것은 국민에게 강요된 ‘기막힌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방역 대책이 철저하다”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미리 백신을 준비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정부의 사과와 예방접종 및 검사·치료비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이다.
20만원 가까운 비용 때문에 검진을 포기한 사례가 속출했고, 검사 및 치료를 하도록 지정된 거점 병원에서는 ‘격리 병실 운영과 다른 환자 기피에 따른 병원 손실분 보전’ 요구가 거셌다. 주판알을 튕기다 못해 아예 거점 병원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요구도 따랐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규모에서 거점 병원이라는 말조차 난센스다. 그러나 우리의 공립병원이나 보건소의 비율은 7%로 OECD 국가들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의료 공공성에서는 최악이라는 미국마저도 30~40%에 이르는데 말이다.
병원이 환자를 꺼리고 유행병 치료에 계급차가 생기는 시스템이야말로 신종 플루 확산 속도 못지않게 우리를 ‘불안하고 동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모두 고위험군이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 체제에 속해 있어도 이 모양인데, 의료 민영화 이후라면? 생각하기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