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달간의 영화제 소식 중 가장 놀라운 소식은 부산영화제 입장객 수에 관한 것이었다. 올해로 열네 번째를 맞은 부산영화제는 회고전을 포함해 309편의 장편영화를 상영하는 역대 최대 규모였으나, 관객 수는 13% 감소한 17만3천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부산영화제가, 규모 면에서는 그 3분의 1에 불과했던 1996년의 부산영화제의 관객 수 18만4천명보다 더 적은 수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는 사실이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1990년대 중·후반에 비교하여 세배 정도 그 규모가 커졌다. 그러면 왜 지난 14년간 관객 수는 거의 제자리에 머문 것인가? 2001년 당시 규모 최대였던 부산영화제의 관객 수는 14만3천명이었고 해운대로 영화제 상영장소를 확장한 뒤 서서히 증가해 지난해 관객 수는 20만명에 이르렀다.
부산영화제는 꼭 규모가 커야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산례를 보여주는 듯하다. 올해 콘크리트 정글인 센텀 시티로 확장한 뒤, 영화제는 예전 영화제를 그토록 매력적이고 유용한 장소로 만들었던, 편하게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여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관객으로 꽉 들어찬 남포동 영화관들에서의 상영, 공기 속에 흐르던 전율감, 시종일관 동료들과 서로 마주칠 수 있었던 그런 매력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
관객이 가장 선호하는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 올해 내가 갔던 모든 상영관에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아주 큰 상영관에도 열댓명을 제외하면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몇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산영화제는 상영관 수 면에서 이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 반열에 올랐지만(올해 36개의 상영관), 올해 평균 좌석점유율은 64%에 불과했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너무 많은 영화가 상영된다!
부산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거대하게 제도화(그리고 정치화)된 거대 국제영화제들의 리그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더 중요한 영혼과 정체성을 희생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장소로 흩어진 상영관들에서 엄청난 수의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영화제의 기능 중 하나인 ‘새로운 화젯거리’를 만들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유독 부산영화제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토론토영화제 역시 거대한 영화제지만, 북미쪽에서 오는 많은 수의 언론 기자들과 배급자들, 훨씬 더 공간적으로 밀집된 수도에서 개최되는 덕에 일정 정도 새로운 화젯거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부산영화제에는 그런 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부산영화제만을 공격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며, 부산영화제의 변화 양상은 전세계의 영화제들이 지난 20년 동안 “왜 스스로 존재하는가를” 망각해온 한 예일 뿐이다. 영화제들은 관객으로부터,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영화산업으로부터 결별한 채 영화에 대한 한 가지 관점만 추구하는 자기 영속적 기계들로 전화해왔다.
국가보조금과 정치적인 이유로 주어진 보조금은 많은 영화제를 인위적으로 공중에 떠다니게 한다. 이들은 관객이 실제로 보고자 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프로그래밍을 하도록 장려한다. 관객은 그들의 발로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가? 그런 것 같다. 많은 국제영화제들이 더 많은 영화를 상영하며 규모가 증가하는 데 반해 관객 수는 줄어들거나 정체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영화제는 작을수록 좋다. 영화제는 프로그래머들의 개인적인 비판적 관점을 추구하기 위한 놀이터여서는 안된다. 당신이 반영해야 할 영화산업과 당신이 봉사해야 할 관객을 보고 귀기울여 배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