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vs 연평해전. 우연히도 같은 소재를 다루는 두편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을 선언했다. 2002년 6월 일어난 ‘제2차 연평해전’을 다루는 두 영화는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가제)와 백운학 감독의 <연평해전>이다. 아이엠픽쳐스, 아이비픽쳐스, 오션드라이브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하는 <아름다운 우리>는 본격 3D 실사 장편영화라는 점을 앞에 내세운다. 제작사이자 메인 투자사인 아이엠픽쳐스 관계자는 “각종 현물지원 등을 계산에 넣으면 총제작비 규모 200억원 정도가 들 전망”이라고 밝힌다. 서울무비웍스, KW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제작하는 <연평해전>도 150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지향한다.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을 발표하게 된 것에 대해 양쪽은 “상대방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개발해왔다”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우리>의 공동 제작사 오션드라이브엔터테인먼트의 양중경 대표는 “2년 동안 개발해온 기획이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프로젝트답게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무비웍스 또한 2년간 개발해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상대방을 신경쓰지 않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현대 해전을 다루는 영화다 보니 해군 등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과연 양쪽에 고르게 지원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드는 의문이 또 하나 있다. 두 영화 모두 MB 정부와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기획된 게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10월29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호국안보결의대회’와 함께 제작발표회를 연 <연평해전>쪽은 노골적으로 우파 정통성을 내세우는 듯 보인다. 뉴라이트 단체로 분류되는 방송개혁시민연대(이하 방개혁)가 공식적인 후원조직으로 참여하는데다 이날 호국안보결의대회에는 극우 인사 조갑제씨까지 초청 연사로 등장했다. 제작사쪽이 “정치색 대신 이 전투에서 숨진 젊은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담아낼 계획”이라고 밝혔음에도 꺼림칙한 것도 그 때문이다. 후원을 하는 방개혁이 신문광고를 통해 “좌파정권이 버린 그들 호국의 영웅으로 다시 살아난다”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도 비슷한 우려를 낳는다.
<아름다운 우리> 또한 양중경 대표가 “정치적 입장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감동과 재미를 담아내는 것이 초점”이라고 밝혔음에도 군의 지원 등을 고려하면 내용을 정부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뉴라이트 등 우익단체들이 <공동경비구역 JSA>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를 좌파영화로 단정해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파 정권의 취향이란 대략 짐작되니까.
그럼에도 나는 한국영화인들의 양식을 믿는 쪽이다. 100% 상업적인 동기에서 출발했을지언정 정치권과 손발을 맞춰 홍보성 영화 혹은 정치적 목적의 영화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가상의 전두환 암살사건을 소재로 한 <29년> 제작이 석연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무산됐고, 현 정부와 가까운 어떤 감독의 영화를 놓고 한 공기관장이 친히 투자사에 투자를 ‘권유’했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에 이런 믿음은 순진무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제동, 손석희의 방송 낙마, 진성호 의원의 김구라 퇴출 요구, 여러 드라마와 방송인들의 표현 수위에 대한 조사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여당이 문화를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은 틀림없다. 두편의 영화 제작 소식을 들으며 근심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