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폭력에 관한 한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자유로울 순 없겠군요.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의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배우 니콜 키드먼이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여성을 연약한 성적 대상으로 묘사, 여성 폭력 문제 심화에 일조했다고 일침을 가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10월21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여성 폭력 관련 청문회에서 ‘영화산업이 악역을 맡은 것인가?’라는 공화당 데이너 로라바커 하원의원의 질문에 대해 키드먼은 “할리우드가 성폭력 증가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맡아온 배역 역시 여성에 대한 잘못된 묘사를 해왔음을 인정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녀 역시 할리우드 산업의 일원임을 생각해볼 때, 일종의 내부자의 발설이 된 셈이군요.
그러고 보니 남성에게 가려져 수동적인 역할에 그쳐야 했던 그녀의 역할들이 떠오르는군요. 배트맨을 뒷받침해줄 연인 닥터 체이스 메리디언으로 등장했던 <배트맨 포에버>나, 견딜 수 없는 노동과 성적 학대에 시달리는 여성 그레이스를 연기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에서처럼 말이죠. 캐스팅 자체가 수동적인 과정인 만큼 이는 키드먼뿐 아니라 다른 여배우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결과일 것입니다. 유엔 친선대사로서 키드먼의 역할은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조장, 사건의 ‘가해자’로 역할하는 할리우드가 충분히 ‘해결자’로서도 위치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성 폭력이야말로 가장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범죄인 만큼 영화산업이라도 먼저 여성 폭력을 조장하는 콘텐츠 자체의 근절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때라는 것이죠. 기금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돈이 필요합니다”라고 앞에 나선 키드먼의 목소리에 설득력이 더해지는군요.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진 여성 폭력만으로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