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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대책없는 낭만주의에 끌리네
김연수(작가) 2009-11-05

<호우시절>을 보며 중국 하얼빈의 북방 미녀들을 떠올리다

중국에서 생활할 때, 광복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8월 15일, 학술행사에 참가하려고 옌지에 찾아온 모 문학평론가 형과 함께 하얼빈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형은 내 중국어 실력을 믿었고, 나는 내 국적을 믿었다. 애니미즘도 아니고 국적을 믿었다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말할 사람이 없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국적. 그러니까 '한궈런'이라는 것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염천시절. 비는커녕 뜨거운 햇살만이 하얼빈 중심가 중앙대가 보도블럭에 작열하고 있었다. 호우시절에 소주라면, 염천시절에는 맥주. 거리에는 세계맥주축제가 열려 하얼빈 맥주인 '하피'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외국맥주를 팔고 있었다. 거기가 중앙대가든 인사동 뒷골목이든, 무릇 소설가와 문학평론가가 만나면 비구름이 몰려와 빗방울이 쏟아지듯이 목구멍으로는 술이 넘어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거리를 걸어가며 거리 매대에서 맥주를 파는 북방미녀들과 수작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수작이라. 초급중국어 과정을, 그나마 두 개월만에 중퇴한 소설가와 그의 중국어 실력을 믿고 하얼빈까지 따라온 문학평론가의 수작이라. 수작이라는 건 간단하다. "&#46776;샤오첸?"이라면 북방미녀들이 귀를 쫑긋하고 듣다가 "량콰이"였나, "싼콰이"였나, 암튼 뭐라고 대답한다. 그 말에 일단 마오 주석이 그려진 지폐를 꺼내면 북방미녀들은 웃는 얼굴로 다시 묻는다. "니 써 나궈런?" 당근 "워 써 한궈런"이다. 바야흐로 욘사마가 동북아를 휩쓸던 그 시절, '한궈런'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북방미녀들과 언어를 초월한 눈빛 수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믿거나말거나. (하긴 일본에서 낭독회를 할 때는 현지 스탭들이 "기므욘수상모 욘사마데쓰"라고도 말했다니깐.)

문제는 하얼빈에서 돌아오는 기차표를 끊어야만 했을 때, 일어났다. 우리는 장춘에서 옌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5시 전까지는 장춘에 도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하얼빈까지 버스를 타고 갔기 때문에 하얼빈에서 장춘까지 기차로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실용 중국어는 바로 "5시 전까지 장춘에 도착하면 되니까 하얼빈을 더 많이 구경할 수 있도록 최대한 늦은 표를 끊어주시오"라는 것이었다. 무슨 전쟁이라도 벌어졌다는 듯이 등짐을 짊어진 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하얼빈 역에서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뭐라 항변할 겨를도 없이 "메이요(없어요)"라는 답을 듣고 줄에서 밀려나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찾아 중앙대가의 한 여행사에 갔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거기에는 젊은 여직원들이 앉아 있었으니까. 다시 한 번 나는 나의 국적을 믿었다. 내가 나의 국적을 이다지도 신봉하게 될 줄이야. 우리는 어떤 의사소통의 어려움 없이 표를 끊었다. 왜냐고? 그들에게 '한궈런'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는 욘사마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말은 믿을 수 없을지 몰라도 그 문학평론가(지금은 여엇한 교수님이 됐다)의 증언은 믿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욘사마처럼 보이는 한, 나는 그 어떤 중국미녀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호우시절>을 보는데, 중국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난무했다. 정신없이 세 가지 언어를 번갈아가며 듣다가보니 갑자기 동하가 두 사람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메이의 말에 "왜 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게 웬 산통 깨는 사투리인가, 자막을 살펴보니 그건 "하우 캔 유 포겟 댓?"이라는 소리였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 그 말이 왜 그 말로 들리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한 번도 남자를 사랑해본 일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반면에 메이의 영어는, 심지어는 중국어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같은 중국어라도 지사장이 지진 피해 현장에서 말하던 "밥 먹었냐?"는 역시 "쓰팔놈아"로 들리더라. 역시 내 오랜 지론인, 소통의 핵심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참 좋다. 그 분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건 소리와 빛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 일부분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자가 될 때, 나는 일상의 소리와 빛에 민감해진다. 비행기 소리라거나 바람 소리, 혹은 도로로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되비치는 거리의 불빛들에 나는 끌린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는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 내리는 청두 거리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센티멘탈해진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도 그처럼 센티멘탈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바라보는 일상은 너무 큰 소리와 아름다운 빛으로 왜곡돼 있다. 그리고 이 왜곡은 의도적이다.

"연수 씨 작품에는 신파가 있어요"라는 말을 지난주에 들었다.(물론 그 문학평론가는 아니다.) 항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속을 좋아하고, 신파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통속과 신파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데 실패한 자의 것이다. <호우시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은 물론 팬더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지만(기다려라, 청두의 팬더들이여. 반드시 찾아가서 말을 걸어보고야 말겠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메이가 남편의 영정 앞에 돼지내장탕면(너도 기다려!)을 바치고 구슬프게 울 때였다. 메이처럼 예쁜 여자가 그렇게 울면 그게 어떤 장면이든 나는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그 장면에서 메이가 운 건 아무래도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의 영정이 웬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행은 사후에 낭만적으로 변형된다고 믿는 나는 동하가 한국으로 떠난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동하는 모든 여자에게 잘 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기 쉽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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