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지수 ★★★★★ 고전 지수 ★★★★★ 그러니 안 보면 후회할 지수 ★★★★★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최고 걸작이 드디어 정식 발매됐다. 사실 데즈카의 걸작들은 지난 90년대 후반 학산문화사에 의해 하나씩 국내에 소개가 된 바 있다. 데즈카의 최대 대작인 <불새>는 물론이거니와 <키리히토 찬가>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데즈카의 성인용 만화들까지 출간됐다. 사실 <우주소년 아톰>은 데즈카 세계의 아주 지엽적인 대륙을 대표할 따름이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진가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문제는 그의 최고 걸작인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불법 복제본으로만 90년대 만화방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만화방에서 <아돌프>라는 제목의 이 걸작을 읽고는 가슴이 너무 뛰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절판된 그 복제본을 몰래 훔쳐가지 않은 걸 얼마나 오랫동안 후회했던가 말이다.
다행히도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5권 세트로 새롭게 발매됐다. 주인공은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세 남자다. 한명은 일본 고베에 사는 일본인 혼혈 독일 소년 아돌프 카우프먼, 그의 친구인 유대인 빵집 아들 아돌프 카밀, 그리고 나치의 수괴 아돌프 히틀러다. 카우프먼과 카밀은 전체 이야기의 관망자이기도 한 일본 기자 도게 소헤이와 함께 히틀러가 유대인이라는 비밀 문서를 둘러싼 첩보극에 휘말려든다. 역사적인 가설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데즈카는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결코 잊는 법이 없다. 당대 최고의 스캔들이었던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사건이나 <작전명 발키리>로 잘 알려진 히틀러 암살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진주만 공습과 나치의 폴란드, 러시아 습격 등 역사적인 사건들이 가상의 첩보전에 얽히고설킨다.
세 아돌프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새겨진다. 아돌프 히틀러는 죽는다. 독일로 건너가 잔혹한 나치의 잔당으로 살아가던 아돌프 카우프먼과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가슴에 품은 아돌프 카밀, 어린 시절의 두 친구는 결국 1970년대 중동 전쟁의 한가운데서 다시 마주친다. 역사의 희생자였던 유대인이 또다시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이 마지막 챕터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인본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반전체주의자였던 평생의 염원을 가로새긴다. 83년에 연재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낡은 부분이 전혀 없는, 거장이 남긴 역사적 걸작이다. 솔직히 데즈카 오사무를 뛰어넘는 만화가는 아직 전세계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