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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허풍선이 타란티노의 거대한 농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언어 유희를 만끽하며 즐기는 다섯 단계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개봉한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역사극에 타란티노가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데 뚜껑을 열어보니 희한한 영화다. 타란티노는 작정을 하고 그 어두웠던 시기에 자기의 독한 농담을 던진다. 타란티노가 상상하는 2차대전 히틀러 암살 대작전은 어떤 영화인가. 그가 영화에 사용한 챕터별 방식대로 따라가보자.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영화적 포인트를 짚어봤다.

챕터1. 분탕질 우화: 타란티노식 기선제압

“옛날 옛적 나치 점령하 프랑스…”라는 자막과 함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시작한다. 이것은 진지한 역사극이 아니므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극을 보는 것과 같이 봐달라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제안이며 기선제압이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다섯개의 챕터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 챕터에서 세 자매의 아버지인 프랑스인 피에르 라파디트는 저 멀리 그의 집을 향해 오는 군용 지프차 한대를 발견하고 긴장한다.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차에서 내린 나치 장교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는 본론을 뒤로한 채 프랑스 주인장에게 예의 바르지만 위협적인 말을 이어 던진다. 그의 말은 내용이 없지만 뱉을 때마다 덫처럼 무섭고 이 집의 주인은 그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유대인 사냥꾼”으로 불리는 한스 란다가 이 집에 온 이유는 주인이 마룻바닥에 숨겨준 유대인 가족을 몰살시키기 위해서다. 결국 가족이 죽을 때 한 소녀만이 살아 도망치고 그녀의 이름은 뒤에 파리의 작은 극장의 사장이 되는 쇼사나(멜라니 로랑)다.

시간이 흐르고, 미군은 나치 세력을 한방에 제거할 수 있는 암살 계획을 세운다. 거침없는 승전으로 나치에 일종의 공포의 상징이 된 알도 레인 중사(브래드 피트) 일당이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주요 인사를 암살하기로 한다. 그 임무를 나치의 선전영화 <민족의 자랑> 시사회장에서 수행하기로 한다. 쇼사나를 사모하게 된 나치의 전쟁 영웅이자 영화 <민족의 자랑>의 주인공 배우의 설득으로 쇼사나의 극장이 시사회장으로 선택되고, 히틀러도 이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다. 쇼사나는 그녀대로, 알도 레인 일당은 그들대로 암살 작전을 짠다.

이야기로만 보아도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역사의 진지한 재구성물로 계획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늘 잘하는 것처럼 분탕질하며 놀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제3제국(나치 치하의 독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유대계 미국인인 내 친구들에게 그 시나리오를 줬더니 ‘정말 대단하다. 멋진 상상력이다. 지금까지는 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일인데’라고 말했었다. 그전에는 몰랐지만 독일인들 역시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상은 했지만 그저 상상으로 끝냈던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사람들은 그 시나리오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지만, ‘과연 우리가 이 영화를 독일에서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독일에서 촬영하기로 결정이 났고 다들 몸조심하자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가 흥미있어하는 건 상상력의 쾌감이지 역사는 아닌 셈이다.

그렇게 하여 <재키 브라운> 이후에 이따금씩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식 동화”(다이앤 크루거), “원기왕성하고 창의적이며 폼을 재면서도 재미있는 유능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미국 쇼 비즈니스의 맥락에서 2차대전을 위치시킨 거의 첫 번째 영화”(짐 호버먼) 라는 평가를 듣는다.

챕터2. 괴물이 나타났다: 히어로를 찾는 법

타란티노의 이야기는 종종 이런저런 가지를 많이 친다. 혹은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느 때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타란티노의 인물 구도는 집단적이며 그 캐릭터마다 특징적이다. 타란티노가 이번에 선택한 방식은 출신 국적에 맞는 다국적 배우의 캐스팅이다. 미국 군인 알도 레인으로는 브래드 피트를, 쇼사나 역으로는 프랑스 출신의 멜라니 로랑을, 비밀 스파이 브리지트 폰 하머스마르크 역에는 독일 출신의 다이앤 크루거를,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 게슈타포 장교 한스 란다 역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프 왈츠를 캐스팅했다.

전체를 관통해서 본다면 물론 알도 레인과 한스 란다가 가장 눈에 띄는 역할이다. 미남자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더이상 미국에서 바보, 멍청이, 머저리, 단순무식의 역할을 브래드 피트보다 더 양식적으로 잘 해내는 배우는 많지 않다. 알도 레인 중사는 아파치처럼 독일군의 머릿가죽을 벗겨 승리의 쾌감을 맛보고 포로들의 이마에 나치의 상징인 만자(卍字)를 칼로 새기기를 즐긴다.

하지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진짜 히어로는 따로 있다. 게슈타포 장교 한스 란다, 누군가 “단순히 악인이 아니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라는 이 연회의 주인”이라고 칭했을 만큼 강렬한 인물, 그리고 그 역을 치밀하게 구축한 크리스토프 왈츠가 진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007 골든 아이> 등에도 출연했지만 영화에서는 그리 낯익지 않은 52살의 이 배우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텔레비전에서 30여 년간 연기해왔다.

그가 토끼를 몰듯이 우회하여 질문을 던지며 핵심으로 다가설 때 그의 표정과 말은 차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늘 지나친 공손함으로 위장되어 있다. 그 공손함은 늘 잔혹함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그는 때때로 코믹하기까지 하다. 성인이 된 쇼사나는 우연히 한스 란다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가 돌아서 나간 다음 쇼사나는 겁에 질린 울음을 터뜨린다. 숨죽이며 그 장면을 보는 건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는 그러니까 괴물이 하나 나타난 것인데, 그가 한스 란다이며, 크리스토프 왈츠다.

챕터 3. 영화 작전 Operation Kino: 어느 길로 가든 영화로 통한다

타란티노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처음 구상할 때 그에게는 “미션을 수행하는 남자들”이라는 모티브가 있었으며 그에 해당하는 영화, 로버트 알드리치의 <특공 대작전>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초기 단계에서만 그랬다. 거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 뒤 완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나만의 <특공대작전>(The Dirty Dozen)을 써보자고 생각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 글을 쓰게 만든 동기는 바로 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원제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는 <특공 대작전>에서 영감을 얻어 엔조 G. 카스텔라리가 1978년에 만든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에서 제목을 따왔다. 모조품을 모조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타란티노가 아니던가. 타란티노 자신이 앞선 두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 영화들과 내용적으로 거의 연관이 없는 별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타란티노에게 정말 중요했던 걸 하나 꼽자면, 그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어느 길로 가든 영화로 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예컨대 이 영화의 작은 유머 중 하나는 히틀러 암살 첩보작전에 동원되는 대원 중 하나가 전직 영화평론가라는 점이다. 단순히 독일 UFA영화에 대한 전문가이며 독일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그가 첩보작전에 동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웃자는 뜻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은 종종 독일의 유명 감독 막스 린더와 레니 리펜슈탈과 G. W 파브스트에 관하여 말하고, 시사회장에는 독일의 유명 배우 에밀 야닝스가 등장하며 또 40년대 UFA 영화의 스타 같은 여배우가 존재하며 <민족의 자랑>(Nation's Pride) 이라는 나치의 선전물이 있다(히틀러가 이 선전물을 보며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나치가 선전 전략으로 영화를 이용한 것은 다 아는 일인데 그 점이 타란티노에게는 상상력의 창고가 된 셈이다.

타란티노에게 2차대전과 대학살의 의미는 사라진다. 물론 타란티노가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가스실의 공포를 밀폐된 극장 안의 공포감으로 바꿔 상상해낸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건 유추일 뿐이다. 타란티노는 2차대전에 관한 영화들을 본 자신의 감상기와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었던 나치 정권 치하에 가능한 공상에 더 관심이 있다. 니트로 필름이 폭발하여 시사회가 열리던 극장은 화재에 휩싸이고 잔혹 코믹한 동화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만 이 영화의 모든 길은 영화 속 영화 <민족의 자랑>의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으로 향해 있다. 그 때문에 “영화의 힘이 제3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타란티노는 농담처럼 말한 것이다. “제3제국(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영화다. 나는 영화가 그런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화로 인해 그들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는 쇼사나가 불을 지르게 해야겠다(영화관 안에서)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나니 ‘무엇으로 불을 지르지? <유대인 쥐스> 필름으로? 아니면 <위대한 환상>의 필름으로?’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영화란 늘 주요한 서브 텍스트에 해당했지만 영화 세계 그 자체가 영화 속 현실이 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는 평가들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챕터4.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총격전 보다 긴장감 넘치는 그것

만약 당신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보고 흥미로워 한다면 그건 유난히 멋진 액션신이나 특별히 아름다운 영상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는 듣는 재미가 있다. 이 영화의 스탭 중 한명은 2차대전에 암살 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기에 피가 흥건한 격투장면을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짐 호버만은 <바스터즈:거친녀석들>에 관하여 “폭력은 즉각적으로 오지 않는다.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빵빵 총 쏘는 것만큼 많이 말하고 또 말한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이 영화의 액션과 폭력은 말이며 많은 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오고 갈 때 금방이라도 그 자리가 폭파될 것 같고, 그 말들이 쌓이는 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치닫는다.

실은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폭력이란 수다의 일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고 나서 그에게 붙여진 오래된 별명 중 하나가 헤모글로빈의 철학자였지만 그 말은 부주의했다. 타란티노의 것은 피가 아니란 말이다. <저수지의 개들>에서도 역시 그 영화의 매력은 할 일 없이 떠들어대는 초반부 대화 씬 에서 이미 조성된다. 타란티노의 인물들이 허황된 말을 하고 서로 툭툭 주고받을 때 총격전보다 더 긴장감이 넘친다는 건 이미 우리의 경험이지 않은가. 그 말들이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 점에서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는 터질 것처럼 밀도 높게 분위기가 조성된 장면이 하나 있다. 영국군 아치 히콕스 일행이 비밀 스파이 노릇을 하는 여배우를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라 루이지안이라는 지하의 후미진 카페다. 거기에는 하필 독일병사들이 한 친구의 득남을 축하하며 단어 게임을 하며 노는 중이다. 어쩌다 그 무리의 한 병사가 여배우가 있는 이쪽 아치 히콕스 일행에 관심을 보이면서 계획이 슬슬 꼬여간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갑자기 진지가 형성되고 긴장은 고조에 오른다. “라 루이지안 장면은 저수지의 개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치와 독일인들이 등장하고, 창고가 아니라 지하 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라고 타란티노는 말했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말의 액션이 펼쳐지는 장면 중 하나다.

챕터5. 포커 게이머 타란티노: 그가 당신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타란티노가 흔한 말처럼 탕아라면 그가 만드는 영화는 분탕질의 영화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는 당돌한 놀이로서의 영화를 만드는데 이제 그 소재가 역사극으로 흐른 것이다. 어쨌든 그의 방식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고 폭발이 아니라 폭발 직전까지 끌고가는 시간에 있다.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도중에 분위기가 생긴다. 액션/리액션의 단계별 총합이 아니라 액션 이후와 리액션 이전의 소강상태가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는 더 중요하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말할 때는, 그러니까 비유의 욕망이 일어난다. 테이블에 앉아 우리가 손에 든 카드패를 알아보는 데에 그리고 그의 패를 숨기는 데에 재주가 있는 도박사라고 그를 비유해보자. 그는 몇 장의 카드패를 쥐고 시가를 물고 상대를 조롱하듯 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카드게임의 승자란 늘 패를 뒤집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패를 뒤집는 순간은 모든 승패가 갈린 뒤다. 어떻게 눙치는가. 어떻게 허풍을 치는가. 어떻게 진심을 감추는가. 어떻게 떠벌이는가. 그것이 테이블에 앉은 뛰어난 도박꾼의 재주이며 도박사 타란티노와 그의 기술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대개 눙치고 허풍치고 떠벌이며 패를 뒤집기 직전까지 우리를 쾌감으로 현혹한다. 도박사의 진심이 오로지 성실한 허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즐길 만한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타란티노가 부리는 기술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다국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에 있다. 독어, 영어, 프랑스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무언가 정보의 부족과 기호의 착오가 발생하며 극의 흐름을 급반전시킨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고자 한다. 어떤 언어를 알아듣고 못 알아듣는 것(첫 번째 챕터와 다섯 번째 챕터), 혹은 관습의 기호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세 번째 챕터)에 따라 각 챕터는 기승 전결화되고 있다. 그것이 각개의 챕터로 나눠진 이유처럼 보이는데, 거기에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기호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게임을 걸어오는 타란티노의 야심이 있다.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말의 연회장이며 기호의 착오로 놀이하는 거대한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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