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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파주
주성철 사진 이혜정 2009-11-03

안개 속의 멜로드라마 <파주>, 그리고 박찬옥 감독과의 대화

박찬옥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파주>는 질긴 인연의 멜로드라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았음은 물론 <할리우드 리포터>와 <스크린 인터내셔널> 등 외신의 호의적인 평가도 끌어냈다. 함께 공개된 다른 한국영화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합치된 반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오래전 단편 <느린 여름>(1998)이 선재상을 수상하고 첫 번째 장편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3)이 뉴커런츠상을 받았으니 상복도 많다. 하지만 두 장편 사이에는 무려 6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그 사이 박찬옥 감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올해 발견의 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할 <파주>를 들여다보며 박찬옥 감독과의 긴 대화를 담는다.

안개가 자욱하다.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한밤중인지 동틀녘인지 시간은 딱히 알 수 없다. 그런 무채색의 도시 파주로 택시가 들어선다. 그 택시 안에서 은모(서우)는 알 듯 모를 듯 묘하게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정적을 깨면서까지 택시 기사가 건네는 말이라는 게 그저 천박한 성희롱 수준이다. 날씨도 피곤한데 사람까지 피곤하다. 은모는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하염없는 시선으로 창밖을 본다. 뭔가를 분명히 보지만 딱히 대상은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그저 유령들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몽환적이라 해도 좋고 비현실적이라 해도 좋다. 은모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물질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안개란 것이 그렇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오직 자기가 몸담고 있는 바로 그 공간만 도드라지게 한다. 말하자면 사람으로부터 원근법을 뺏는다고나 할까. 그렇게 <파주>의 은모는 그저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인물이다. <파주>는 바로 은모가 바라보는 삶의 풍경이다.

전작보다 회화적이고 장르적인

박찬옥 감독이 오래전 <느린 여름>(1998)을 함께했던 김우형 촬영감독과 다시 만난 <파주>는 그처럼 시적이고 몽환적인 풍경으로 시작한다. 안개는 영화감독이나 촬영감독이 한번쯤 다뤄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이미지 재료다. 그런 점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질투는 나의 힘>(2003)의 도입부다. 이원상(박해일)이 교장선생에게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는 와중에 국기 파는 아저씨가 들어와 이야기를 방해하고, 또 운동장에서는 <마카레나> 음악이 큰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뭐라 딱히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낯선 것들이 뒤엉켜 부딪히면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박찬옥 감독이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편입하기 전까지 미술학도였음을 감안하면, 어딘가 조형적이고 회화적인 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풍경이었다. 또한 그것은 <질투는 나의 힘> 전체를 구성하는 감독의 입장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파주>의 도입부에서 그런 불협화음을 수렴하는 것이 바로 안개다. 그것은 영화 속 사건의 비밀도, 인물들의 숨겨진 마음도 모두 삼켜버리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질투는 나의 힘>이 영화 내내 ‘그림 같은 화면’을 애써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면 <파주>의 도입부는 무척 회화적이다. 박찬옥 감독이 시나리오 도입부에서 ‘유흥가 건물이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다고 묘사한 것처럼 이미지의 심상과 조형적 구도가 명확하다. <질투는 나의 힘>과 <파주>를 가르는 경계, 그리고 박찬옥 감독의 변신이라 부를 만한 근거가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흥미로운 건 <질투는 나의 힘>과 <파주> 사이에서 묘한 연결고리가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장면에서 편집장 한윤식(문성근)의 딸 미림(김꽃비)과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원상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감정은, 물론 관계는 다르지만 <파주>에서 공부방의 선생과 제자로 만난 중식(이선균)과 은모를 연상시킨다. 또 <질투는 나의 힘>에서 박성연(배종옥)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언니와의 다정한 모습은 직접적으로 <파주>의 자매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구구절절 복기해보는 것은 결국 유사한 관계망 안에서 얼마나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됐는지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당시 박찬옥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2000)의 조감독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질투는 나의 힘>의 기교없음이 마치 그의 스타일인 것처럼 인식됐다면 <파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 영화에서 의미심장한 두번의 고속촬영 장면까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파주>는 대사가 아닌 카메라로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것 같은 순간들이 꽤 있다. 그런 점에서 <파주>는 모호한 욕망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질투는 나의 힘>과 달리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고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정통적인 장르의 화법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의 전환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파주>는 감정이입의 자리를 폭넓게 펼쳐놓은 좀더 대중적인 화법의 영화다. <질투는 나의 힘> 당시 홍상수 감독의 영향이나 관계에 대해 지겹도록 질문받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무척 생경하다. 어쩌면 <질투는 나의 힘>으로부터 6년, 뜻하지 않게 상당히 오랜 기간을 공백으로 남겨뒀던 박찬옥 감독의 좀더 대중적인 제스처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질투는 나의 힘>과 <파주>가 보여주는 도입부의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파주>에서 택시 기사는 혼자 한참을 떠들어대지만 <질투는 나의 힘>의 교장선생 얘기처럼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딴소리다. 은모는 마지못해 듣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그만뒀으면 싶고, 어쨌건 택시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질투는 나의 힘>이나 <파주>나 그 타이틀 시퀀스가 보여주는 것은, 뭐든지 자기 뜻대로 풀려가지 않는, 주인공의 힘이나 의지대로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척박한 현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고나 할까. 박찬옥 영화의 주인공들이 늘 필요 이상으로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랜 사랑의 드라마 + 민주화운동 세대의 기억

실제 지명인 파주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처럼(하지만 장률 감독의 <이리>(2007)와는 다르게) 굳이 그 장소가 아니어도 무방한 현재 대한민국의 소도시 어딘가다. 늘 안개가 내려앉아 있어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그 속의 현실은 서울의 투기자본이 침탈하면서 원주민의 삶이 재개발 난민의 처참함으로 급속도로 치환되는 곳이다. 그런 상황은 도입부의 택시 기사 대사로도 설명된다. “사방이 논밭이고 벌판인데 간판 하나로 어디 사람들이 찾아오겠어? 개발도 되기 전에 왜 이런 유흥가 건물부터 들어서는지 알아? 개발이란 게 다 사바사바다 이거야. 여기가 고향인가? 이렇게 변한 지 꽤 됐는데.” 그리고 은모에게 남겨진 집 또한 이른바 ‘조폭’들로부터 매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게 오랜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은모는 몇년 전 사고로 죽었던 언니(심이영)의 사고 사유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언니의 남편 중식이 자기 앞으로 보험금을 남겨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7년 전, 은모가 가출한 사이 언니는 가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때부터 은모는 형부 중식과 함께 살아왔다. 이후 은모는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중식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불편함에 인도로 떠났던 것이다. 돌아와보니 현재의 중식은 철거민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의 리더 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찬옥 감독이 지극히 장르적 화법을 따르되 자기만의 서명을 새겨 넣는 방식은 바로 그 환경 묘사에 있다. 구호가 사라진 시대, 여전히 사람들이 몰래 모여서 행동강령을 학습하고 철대위가 재개발에 맞서 용역 깡패들과 일전을 불사하는 풍경은 비판적 사회파 영화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개봉영화에 빗대 말하자면 ‘디스트릭트 파주’쯤 된다고나 할까. <파주>는 그렇게 두 남녀의 오랜 사랑의 드라마에, 감독의 개인사적 동기를 유추해볼 만한 과거 민주화운동 세대의 기억이 결합한 작품이다. 그 풍경에 함축된 의미만으로도 <파주>는 가치있는 작품이다.

재개발을 둘러싼 험난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걱정되는 철대위의 투쟁의 끝은 어떨지는 자욱한 안개만큼이나 모호하다. 아니 뿌연 안개 속에서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유령이 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되묻는 거다. 영화로 옮겨지지 못한 시나리오 대사 중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은모의 친구는 “파주에 왜 안개가 많이 끼는 줄 아니?”라는 묻고는 “그건 한국전쟁 때 이 동네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그런 거래. 사람이 죽으면 ‘인’이 나오는데 그게 다 안개가 되는 거래”라고 얘기해준다. 그러니까 철대위 사람들이나, 학생운동을 하다 파주로 흘러들어온 중식이나,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은모나, 어쩌면 곧 안개의 입자가 될지도 모를 운명의 사람들이다. 과거 사람들이 죽어간 동네에서 또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나 할까.

모순되고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의 탄생

박찬옥 영화의 주인공들은 겉으로 뭔가 잘, 아니 ‘전혀’라고 할 만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질투는 나의 힘>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박해일이 뒤늦게 도서관 사서를 욕하는 장면의 갑작스러움처럼 말이다. <파주>의 두 주인공이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끝내 막다른 곳에 다다르고서야 어려운 그 한마디 고백을 털어놓는 것도 다 그래서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누구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세게 요동치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한다. 중식은 늘 유배자로서의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은모는 하나뿐인 혈육인 언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쉽게 자신의 감정을 용인하지 못한다. 중식이 이선균의 연기와 별개로 꽤 전형적인 캐릭터라면 서우가 연기한 은모는 (어쩌면 <파주>의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해도 좋을) 한국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모순되고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다. 더불어 7년의 시간을 오가면서 교복과 사복을 번갈아 입으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배우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보면 서우의 존재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나치게 지엽적이고 기능적인 접근이랄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파주>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통속성과의 경주이자 그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의 척박함은 변한 것이 없고, 여전히 우리 뜻대로 풀려가는 일은 없다. 형부와 처제의 사랑, 원하지 않은 결혼으로 인한 불행 등 <파주>의 속살은 통속성 그 자체지만 박찬옥 감독은 이선균과 서우라는 현재의 얼굴을 빌려, 안개라는 또 다른 주인공의 얼굴을 빌려 근사한 품격으로 매만졌다. 올해의 멜로영화로 응당 치켜세울 만한,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더 음미하게 되는 여운 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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