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이 제28회 밴쿠버국제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했다. <회오리 바람>은 한 10대 소년의 지독한 사랑을 그리는 영화다. 부모 몰래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소년은 어른들에게 혼난 뒤, 끊임없이 방황한다. 학교는 가기 싫고, 일을 해보려 했더니 그마저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한다. <싸움에 들게 하지 마소서>(2003), <꿈속에서>(2007) 등의 단편을 통해 10대를 고찰했던 장건재 감독은 특별한 줄거리를 배제한 채 집요한 연출로 당시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묘사했다. 수상 소식으로 먼저 알게 된 그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 처음으로 경험한 해외영화제였다. 기분이 어땠나. = 사실 출품됐다는 것보다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기뻤다. (웃음) 다른 아시아의 또래 감독들과 만난 게 좋은 경험이었다. 서로 어떻게 제작비를 마련했냐고 물었다. <회오리 바람>은 영화진흥위원회와 경기영상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받았는데, 다들 놀라더라. 특히 일본 감독들이 부러워했다. 관객과의 대화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외국 관객인데도 한국의 10대들이 입시와 가부장적인 제도에 억압받는다는 점에 공감하는 듯 보였다. 주인공 남자애가 여자친구 집에 가서 혼나는 장면은 다들 재밌어하더라.
- <회오리 바람>은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된 작품인가. =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내가 지나온 10대에 바치는 영화랄까. 학교 다니기 싫었고, 연애도 제대로 안되고,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던 그 시절 기억이 나에게 오래 남아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영화에는 내 경험을 순화해서 묘사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1년 정도 아예 학교를 안 나갔던 것 같다. 등교 도장만 찍고 바로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으니까. 그래도 안 잘린 걸 보면 신기하다. (웃음)
- 여자친구랑 가출했다가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것도 경험인가. = (잠시 침묵) 그러니까… 당연히 내 경험이 많이 반영돼 있다. (웃음) 그 시절에는 여행도 가출이 된다. 나는 가출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 여자친구한테는 여행을 가자고 했다. 영화 속 상황은 영화적으로 풀어낸 거다. 실제 내가 겪었던 상황은 훨씬 더 격렬했다. 그때는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밖에 못하는 게 아닐까? 주인공 소년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르는 아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 10대 시절에 방황을 하면서도 영화는 좋아했나보다. = 정말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영화를 저렴하게 보여준다는 광고를 봤다. 워낙 학교를 안 가던 때였으니까, 시간이 많았다. (웃음)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문화학교 서울이었다. 영화를 끝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단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다른 강의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그곳에 앉아 있는 게 좋았다. 2년을 넘게 다녔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걸지 않으니까 더 편했던 것 같다. 나중에야 지금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조)영각이 형이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더라. “고등학생인데, 매일 와서 영화 보고,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는 애야.(웃음)” 그 뒤에 영화과에 진학하면서 학교에 순종적인 학생이 됐다.
- <회오리 바람>으로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다음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 그동안 의도적으로 10대 이야기를 하려 했던 건 아닌데, 만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음 작품은 <회오리 바람>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도 있고, 아예 다른 것도 있다. 일단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되는 것부터 찍는 거다. 물론 호기심 많고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10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 이런 인터뷰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질문이지만,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 안 그래도 어제 생각을 해봤다. (웃음) 거친 언어로 표현하면 진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경험해서 나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이건 진정성하고는 다른 이야기다. 언제나 생각해온 것인데, 진짜 이야기를 하면 거대한 구조나 특별한 장치가 없이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작품마다 나의 영화적 능력이 성장했다는 걸 증명하기보다는 여기서 내가 이룰 수 없는 걸 더 밀어붙여보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