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은모(서우)가 3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 파주로 돌아왔다. 그녀는 죽은 언니 은수(심이영)의 남편 중식(이선균)이 자신 앞으로 보험금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파주 개발을 둘러싸고 지역 깡패와 원주민의 싸움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중식은 철거민대책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 중식을 바라보는 은모의 마음은 복잡하다. 8년 전 처음 파주에 나타난 중식이 은수와 결혼할 때, 당시 중학생이던 은모는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심경을 내비쳤다. 언니와 동생, 형부와 처제, 남편과 부인이던 이들에게 뜻밖의 사고가 터지는데….
형부와 처제, 법률상 2촌이라는 관계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서로를 가질 수 없다. 박찬옥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파주>는 그 금기에서 비롯되는 비밀스런 파장을 그린다. 그리고 <파주> 전체가 ‘문자 그대로’ 그 감정의 풍경화가 되어간다. 안개가 자욱한 파주, 슈퍼16mm로 촬영하여 블로업한 그 지역의 풍경은 일견 거칠고 투박하다. 안개 자체가 그러하듯 뭉개지고 흐려지는 경계선을 통해 풍경과 인물, 정서와 물질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파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한 장면, 용역깡패들이 살수차를 동원해 철거민들에게 물을 퍼붓고 철거민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그 사이로 은모가 천천히 걸어가는 풍경을 잡는 플랑 세캉스의 야심적인 연출에서도, 이 지옥도 같은 현세의 풍경은 주인공들의 헝클어진 영혼을 맞받아 비춰내는 존재들이다.
또한 <파주>는 말의 풍경이기도 하다. 중식의 표현에 따르면 “해서는 안되는 말, 할 수도 없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영화에서 중식이 각기 다른 시간대에 두번 던지는 질문, “왜 그랬니?”에 대한 은모의 답은 언제나 불충분하거나 혹은 표피적인 속임수다. 그녀는 각기 이렇게 답한다. “우리 언니 건드리지 마,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와 “두려워서요”. 그 중층적인 아이러니는 때로 말이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에게 매를 맞던 은모는 (이경영이 연기하는)나이트클럽 사장이 들어간 방 입구,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복도의 텅 빈 부분 어딘가를 응시한다.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설명해내고 붙잡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이게 저한테 할 수 있는 모든 얘기예요? 난 꼭 진실을 알아야겠어요.” “다 진실이야, 다.”
<파주>는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마을을 휘감는 안개처럼 수수께끼의 매혹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근래 들어 이토록 감정을 자극하고 또 그 감정이 인물과 풍경과 상호 조응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