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눈 암살자 9인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어쌔신>의 두 번째 공연은 절묘한 타이밍에 우리에게 도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암살과 자살과 자연사는 죽음이라는 서랍 안에 함께 놓일 뿐 엄연히 다른 의미를 띠지만 스티븐 손드하임의 기이한 역작은 태평양 너머 타국의 역사를 노래하면서도 우리네 불운한 기억의 한 소절까지 도전적으로 끄집어낸다. 빨래를 널던 주부가, 주문을 받던 웨이트리스가,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 소식을 듣곤 이어가는 노래 <Something Just Broke>로. “아침을 먹고 있었죠. 그때 그 소식을 들었어요. 뭔가 깨졌어. 잊지 못할 순간.”
물론 <어쌔신>은 손드하임이라는 꼬리표에 어울리게 사실적이라기보다 몽환적이고 냉소적이며 때론 격정적인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어지러이 들려오는 암살자들과 당대 미국인의 목소리를 자기 검열 없이 옮기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링컨을 죽인 존 윌크스 부스를 비롯해 다른 시대에 속한 역대 암살자들은 어느 축제의 사격장에 초대받고, 카니발적인 이 공간에서 자신이 왜 대통령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토로한다. <그때 그사람들>의 일부 장면을 둘러싸고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을 비웃기라도 하듯 1990년 미국에서 초연된 <어쌔신>은 총구를 숨기기는커녕 심지어 관객을 향해 대놓고 총을 쏘는 파격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바꾸라”면서. 피로 물든 역사와 이를 이끈, 혹은 이에 함몰된 이들의 논리, 그 안에 스민 광기를 두눈 부릅뜨고 직시하라는 의미로 읽혀 마음이 섬뜩하다.
이전의 1/3에 불과한 23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대신 그랜드피아노 2대만을 사용해 공연한다는 점이 2005년 초연과 가장 큰 차이다. 배우들과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초연 멤버이자 <불꽃처럼 나비처럼>으로 영화 데뷔한 최재웅 외에도 강태을, 한지상, 김대종, 이창용, 최혁주, 이석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