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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정래에게 묻고 싶은 84가지 것들
이다혜 2009-10-22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지음, 시사IN북 펴냄

“종교는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쓴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은 그의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그 자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에게 받은 500여 질문 중 간추린 84개의 질문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성실한 답변을 담은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작가로 살아온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당장 그의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쓸 수 있습니까. 예술을 하는 데 재능과 노력은 어느 정도 비율이어야 합니까.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 공통적으로 전달하고픈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황홀한 글감옥>은 그에게 묻고 싶은 거의 모든 질문이 총망라된 책이다. 질문에 답하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승려임에도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그 자신이 승려가 될 뻔했던 사건부터 시인인 아내 김초혜와의 연애사, 대하소설 3부작의 현장 취재 이야기,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하게 한 이유, 경찰과 검찰의 끈질긴 수사에도 작품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원동력… 심지어 <태백산맥>에 야한 장면이 왜 많이 나오는지까지 모든 것을 밝힌다. 세계문학전집 100권, 한국문학전집 100권, 중단편소설집 100권, 시집 100권, 기타 역사사회학서적 100권을 읽지 않고는 소설을 쓸 생각을 하지 말라는 조언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글에 대한 헌신이 없이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조정래는 이 책을 통해 그 자신이 헌신하고 노력해온 삶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의 백미는 문법에 맞지 않는 질문이나 다소 무례한 질문에 대처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태백산맥>을 읽다 말았다는 국문과 학생의 질문에 “쯧쯧쯧, 너무 솔직한 것도 병입니다”라면서 “어쨌거나 독자를 사로잡지 못한, 절반의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한다거나, 질문 전체를 아예 다시 써서 문장을 바로잡아 보여주기도 한다. “<한강>에서 전라도 사람을 하와이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 “<한강>에서 하와이 문제는 <태백산맥>에서 정하섭과 소화의 문제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씌어 있습니다. 국어시간에 빵점짜리 질문이 낱말의 뜻을 묻는 것이고, 가장 엉터리 국어 선생이 그 질문에 뜻풀이를 해주는 것입니다. 낱말 뜻 찾기는 언제나 예습에 속하는, 학생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게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대작가의 일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