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박치기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이봉우 대표의 인생에는 무모한 일들이 많았다. 자신의 제작사인 ‘씨네콰논’의 첫 수입 영화가 “정말 돈이 안될 것 같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카메라광>(1979)이었는가 하면, 재일한국인을 소재로 한 <박치기!>(2004)로 일본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편제>(1993), <쉬리>(1998) 등 한국영화를 일본 극장에 배급해 일본 내에서 한류의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 공로로 지난 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공로상’을 받았다. 한편 일본영화를 주로 틀던 극장 씨네콰논 명동이 ‘건물주의 부도’로 문을 닫은 뒤, 그는 현재 일본에서 지내면서 여전히 활발하게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인생은 박치기다>(씨네21북스 펴냄)도 냈다. 이처럼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봉우 ‘씨네콰논’ 대표가 부산을 찾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6년째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학생은 20살에서 60대 할머니까지, 그리고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과 ‘업’으로 하려는 사람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영화를 업으로 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배우 양성 과정’과 ‘영화 비즈니스 과정’을 만들었다. 그렇게 일본 영화산업에 진출한 학생들이 꽤 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몇명 있고.
-어떤 일로 부산을 찾았나. =공식적인 일정은 없다. 3박4일 동안 혼자서 ‘아시안필름마켓’을 둘러보면서 수입, 공동제작할 만한 프로젝트들이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는 일본 촬영감독협회를 비롯해 일본 영화인들도 대거 몰려든다. 이들을 만나 비즈니스를 할 예정이다. 지인들도 만나고.
-공동제작이라면, 혹시 한국쪽과의 합작인가.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합작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경계를 나누는 것 같고…. 현재 프랑스영화의 80%가 공동제작이지 않나. 그만큼 국경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최근 세계 영화산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자국시장 내에서 약 40%의 점유율을 점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다. 파이를 더 키우려면 이 둘의 조합이 꼭 필요하다. 단, 새로운 공동제작 시스템을 전제조건으로.
-한·일 공동제작은 아니지만 <도쿄!>의 봉준호 감독과 가가와 데루유키와 같은 조합처럼 말인가. =그렇다. 가령, 일본 촬영감독이 한국영화를 촬영한다거나 봉준호 감독처럼 한국 감독이 일본 스탭들을 이끌고 연출하는 식 말이다.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송강호와 가가와 데루유키가 겨루는 영화를 보고 싶지 않나. 이런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 영화인들은 이런 시도를 꺼린다. 일본 밖으로 나오거나 산업을 주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밖으로 나오려는 누군가가 많을수록 시장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시장과 일본시장은 그 사정이 다르다. =맞다. 한국시장은 굉장히 역동적인 반면 일본시장은 굴곡이 전혀 없다. 이런 적이 있었다. 한국쪽 제작사를 소개해달라는 일본 제작사들이 더러 있어서 한국의 한 거대 제작사와 연결해줬다. 단번에 거절당했다. 한국 입장에서 굳이 공동제작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그 차이를 좁히는 일도 필요하다.
-아트영화를 즐겨보는 등 영화광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손익계산을 해야 하는 비즈니스에 좋은 취미는 아닌 것 같다. =맞다. 나 같은 사람은 영화를 하면 안된다. (웃음) 처음으로 수입한 영화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카메라광>(1979)이었다. 칸영화제에서 봤는데, 일본에서 또 보고 싶더라. 또한, 일본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수입했는데, 몇 만명 들었더라. 쫄딱 망했다. (웃음) 젊었을 땐 그렇게 무모했다. 그런 건 있다. 그런 취향이 좋은 영화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 적어도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은 관객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줄 책임이 있다.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뭔가. =두 작품이 있다. 먼저 <훌라걸스>의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상일 감독이 연출하고,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 내년 1월에 제작에 들어간다. 또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촬영이 끝난 <히로쇼>라는 작품이다. 총 3개월간 촬영한 이 작품은 만화 <디트로이트 메탈시티>처럼 가면을 썼을 때와 안 썼을 때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