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비픽처스와 iHQ, 중국의 폴리보나와 홍콩의 선드림 등이 합작한 <연애합시다>. 종전보다 자본과 기획과 창작자가 좀더 자유롭게 결합했다.
10월16일 폐막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이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당연히 영화였겠지만,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화두는 ‘합작’이었을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영화와 세계가 만나는 통로뿐 아니라 아시아영화 제작이 논의되는 공간이 돼왔다. 특히 아시안필름마켓은 영화 판매뿐 아니라 합작 프로젝트를 위한 중요한 인큐베이터 구실을 했다. 결국 합작은 부산영화제에서 늘 중요하게 떠올랐던 키워드일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의 경우는 유난히 눈에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합작 논의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면, 그건 합작의 수위가 이전과 현격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의 합작이 한국 제작사와 투자사가 한국 감독, 한국 배우 중심의 프로젝트를 준비한 뒤 여기에 해외 자본과 캐스팅 일부를 덧붙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부산에서 확인된 합작은 ‘현지화’를 추구하거나 자본과 기획과 창작자가 좀더 자유롭게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의 나비픽처스와 iHQ, 중국의 폴리보나와 홍콩의 선드림 등이 힘을 합친 <연애합시다>, 나비픽처스와 CJ엔터테인먼트, 싱가포르의 MDA 등이 참여하는 <네온사인>, 한국의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와 일본의 다케 마사하루 감독이 힘을 모으는 <카페 서울>, 한국의 바른손이 일본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과 함께하는 <뉴머릭 러브>, 그리고 PPP 프로젝트인 정재은 감독의 <폭력부부의 종말>(가제) 등이 그런 경우다. CJ엔터테인먼트가 일본 T-JOY와 함께 일본에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 또한 비슷한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합작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연애합시다>의 경우 한국 제작사와 투자사가 중국과 홍콩의 투자, 제작사와 손을 잡고 중국에서 중국 감독, 중국 배우를 기용해 만든 영화이고 <네온사인>은 한국 제작사와 투자사가 싱가포르, 홍콩, 중국의 투자, 제작사와 함께 한국의 필감성 감독과 한국·중국·홍콩 배우를 붙여 만드는 영화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합작 방식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금융위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합작 프로젝트가 자국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뒤 다른 국가에 손을 벌리는 식이었다면,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초기 단계부터 자본을 혼합할 필요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할 ‘자본난’ 또한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듯 보인다. 물론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동안 수많은 아시아의 투자, 제작, 창작자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합작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부산영화제는 오랜 아시아영화 합작에 관한 논의가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을 확인케 하는 계기였다. CJ의 일본시장에 대한 오랜 고민이 빚어낸 결과다.
이같은 움직임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아시아 영화시장 통합’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각각의 합작 프로젝트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연애합시다>의 한국쪽 프로듀서였던 김성수 감독의 말은 귀담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외시장 진출, 공동제작 혹은 합작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손님으로 간다’는 말과 같다. 한국에서처럼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서,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