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곤경에 처했다!>를 보려다가 정말로 곤경에 처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은 영화 상영 40분 전. 며칠간 머물던 해운대구 중동의 호텔 앞에서 CGV센텀시티까지는 넉넉잡아 15분이었다. 한데 빈 택시가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5분, 10분, 15분, 20분… 계속 허탕이었다. 초조했다. 10분 정도 남기고서야 합승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같은 방향 승객이 ‘관용’을 베풀었다. 근처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려 교통이 통제된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시간에 맞춰 갈지 의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얄짤없기로’ 유명했다. 영화 시작되면 절대 문 안 열어준다. 극장 앞에서 물먹고 돌아설 공산이 컸다. 택시 안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영화도 별로라는데… 역시 가지 말걸 그랬나?”
영화를 먼저 본 지인에게 악평을 들은 건 이틀 전이었다. 부산영화제 메인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 오른 12개 작품 중 하나라 나름 기대했는데 영 아니라는 얘기였다. “홍상수 영화랑 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무지 짜증이 나. 홍상수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은 찌질하면서도 귀엽잖아. 이 주인공은 그저 미워!” 다음날 아침에 예매를 해야겠다고 머릿속에 찜을 해둔 터라 혼란이 왔다. ‘그냥 다른 걸 볼까.’ 그럼에도 예매를 했다. 주인공이 얼마나 미운지 확인할 생각이 없지 않았던 데다, 몇 시간 뒤 어느 술자리에서 그 남자주인공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영화 꼭 보러 갈게요”라고 덕담까지 날렸으니….
아무튼 ‘깔딱고개’를 넘은 듯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극장 객석에 앉는데 성공했다. 소상민 감독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13년 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대한 완전한 오마주처럼 보였다. 제목의 어감부터 비슷하다. <돼지가…>에선 삼류소설가 효섭(김의성)이, <나는…>에선 삼류시인 선우(민성욱)가 주인공이다. 둘 다 여자관계 좌충우돌이다. 자존심은 무척 세지만 주변으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그걸 못 참고 가끔 진상을 떤다. 그러다가 공권력의 쓴맛을 본다. 마지막엔, 이런 스타일의 영화답지 않게 ‘피’를 보는 것까지 닮았다. 나는 재밌게 봤다. 한심한 인간의 소동극을 보며 한심하게 여기느냐, 정겹게 봐주느냐는 종이 한장 차이다. 미학적인 척하는 유려한 대사발도 살짝 닭살이 돋기는 했지만 귀엽고 유쾌했다(누구는 주인공 민성욱이 유해진을 닮았다고 하고, 누구는 신하균을 닮았다고 했다).
여기까지 썼는데… 나는 다시 곤경에 처했다. 결론을 뭐라고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폼잡고 현실과 연관시켜 ‘곤경에 처한’ 손석희와 김제동을 위로해볼까. 당신들은 찌질하지도 않으니, 그까짓 곤경쯤 쉽게 헤쳐나갈 거라고? 유치하다. 결론이 필요한가?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이야말로… 곤경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