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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하트넷] 트란 안 훙 작품이라 묻지도 않고 했다

부산에서 만난 <나는 비와 함께 간다> 클라인 역의 조시 하트넷

조시 하트넷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게스트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배우다. 그런데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그 흔한 수행원도 없이 성큼 인터뷰룸에 들어선 그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바랜 진과 모직 셔츠의 편안한 차림새만큼이나 그는 첫마디부터 자신을 솔직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배우였다. 이병헌, 기무라 다쿠야를 포함해 자신까지 수염을 기른 포스터를 가리키며 “나는 수염과 함께 간다,라는 제목을 붙여도 되겠죠?”라고 농담을 건네는 그에게서 자기혐오와 구원을 오가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클라인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전적인 진지함을 고수하는 대신, 그는 유려한 대화의 방식을 습득한 재치있는 달변가였다.

<진주만>과 <블랙 호크 다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한 연기생활 13년, 그는 그 관심을 즐기는 대신, 배우로서의 도전이라는 과제로 기꺼이 전환했다. 경험이 곧 좋은 연기의 밑바탕이 된다고 믿는 그는 최근 <21세기 사상의 진화> 같은 사전 두께의 책을 읽고 있으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 만들기를 궁리하는 배우 이상의 배우다.

-트란 안 훙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트란 안 훙 감독이 영어로 영화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그의 전작 세편을 모두 찾아봤다. 그의 작품의 팬이 되었고 제의를 받자마자 수락했다. 내용도 모르고 캐릭터도 몰랐지만 그의 작품이라 신뢰가 갔고, 그의 비전에 완전히 나를 맡길 수 있었다.

-클라인은 기존 형사 캐릭터와 달리 자기 성찰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클라인은 전통적인 형사추리물의 형사가 아니다. 지적으로 궁리해서 범인을 파헤치고 그를 잡는 게 목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범인에게 공감하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연쇄살인마와 시타오 둘 사이엔 그래서 잡기 위한 게임이 아닌 갈등이 생산된다. 이렇게 복합적인 캐릭터는 트란 안 훙 감독의 영화여서 가능한 결과다. 그의 세계에선 모든 캐릭터가 한 가지 행동에도 18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이 아닌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제작되어서인지 트란의 이같은 색깔이 더욱 극명해졌다.

-내면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클라인은 고뇌를 시각적으로 표출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있다. =연쇄살인범과의 교감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감정 상태다. 극단적으로 불쾌하고 어두운 연기였다. 게다가 클라인은 영화 속 유일한 서구인이고 타인과의 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떠도는 캐릭터다. 일종의 유령 같은 존재다.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감성적인 면이 많지만 그런 장면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

-LA, 필리핀, 홍콩을 오가는데다 프랑스 감독, 한국 배우, 일본 배우, 미국 스탭이 협업하는 국제적인 촬영이었다. 현장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배우들마다 통역사들이 따라붙는 식이었다. 나는 기술 스탭이 대부분 미국인이라 덕을 본 편이다. 세개 언어를 할 줄 알면 삼중언어습득자, 두개 언어를 할 줄 알면 이중언어습득자라고 하는데 한개 언어를 할 줄 알면 미국인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웃음)

-감독이 ‘전작땐 배우들을 통제한 반면, 이번 작품은 배우들이 자율적인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었다’고 하던데, 상호 소통이 잘 이루어진 편이었나. =명확한 규정이 없이 시작됐고, 촬영 중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트란 감독이 대화를 즐겨서 캐릭터도 변화가 컸던 것 같다. 기무라 다쿠야 같은 경우 일본에서 TV 쇼, 밴드 활동으로 너무 바빠 촬영 중에도 일본과 홍콩을 오가느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반면 병헌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은 한 장면밖에 없었지만 서로 잘 통했다. 홍콩 촬영 때는 매일 밤 감독과 함께 어울리고 대화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일종의 유대가 생겼다. 촬영장은 여름수련회 같은 곳이라 짧은 시간 서로 친해지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곳이다.

-<진주만>의 스타로 부상했지만, 블록버스터의 잇단 제의에도 ‘노’를 하는가 하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거침없이 오가는, 규정하기 힘든 배우다. 작품 선택에 있어서 가장 최우선은 무엇인가. =13년 배우 생활에 스무편 정도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매 작품, 감독과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기존에 안 해본 역할, 독특한 영화를 찾는다. 위험이 존재하지만 과감하게 그 위험을 받아들인다. 때로 대중이 원하는 걸 알고 거기 맞춰서 연기를 하는 배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내 스스로 연기가 지겨워질 것 같다. 배우로서 내 미래에 기회를 열어두는 편이다. 계획은 있지만 모험은 피하지 않을 것이다.

-배우로서의 강한 자의식을 가진 것에 비해 스타로서 비쳐지는 데 대한 강박은 없어 보인다. =스타로 내 캐릭터를 상품화하는 데 관심없다. 아무래도 내가 참을성이 없어서인 거 같다. (웃음) 어떤 옷을 입었느냐, 혹은 남들이 말하는 나의 소문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삶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뉴욕 거리에서 내가 핫도그를 먹으면 배가 고파서 먹는 거고, 자전거를 타면 어딘가 가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행동들을 한다면 아주 갑갑할 것이다. 오늘 같은 이벤트에도 슈트 대신 캐주얼을 입지 않았나! 내 성격을 알아서인지 이제 누구도 그런 걸로 간섭하지 않는다. 아티스트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친한 힙합 뮤지션 친구가 있는데 그 역시 인터뷰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이번 방문을 위해 호주에서 뉴욕으로 다시 부산으로 긴 여정을 거쳤다. 호주에선 차기작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1927년 프로젝트’라고 아직 제목 미정의 영화를 찍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 스타일의 음악이 사용되는 뮤지컬영화다. 제작 규모가 큰 편이라 호주에서 한신을 찍고 그 걸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려고 준비 중이다. 클라인이 워낙 어두운 역할이었던 터라 당분간은 좀 잊고 가벼운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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