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직업이 있다면, 그건 바로 기자다. 늘 새로운 흐름을 좇는 기자와 많은 새로움의 원형이 되는 고전물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클래식 중독>의 저자 조선희는 <씨네21>과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깊고 깊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영화 주간지의 업보인 새 영화 중독에서 벗어나 한국 클래식영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료원 생활을 시작하니, 옛 영화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옛것이 새것보다 짜릿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한 전직 기자의 새 업보 이야기다.
이장호,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 신상옥….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의 ‘짜릿한 고전 리스트’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의 거장 감독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대표작에 치중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감독들의 인간적인 면까지 조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장 많은 페이지(38p)를 할애하며 애정을 표현한 장선우 감독을 예로 들어보면, 저자는 <경마장 가는 길>이나 <나쁜 영화> <거짓말> 같은 논쟁작 대신 왜 <꽃잎>이 걸작인지 공들여 설명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 이후 충무로를 떠난 장 감독에 대한 안타까움도 숨기지 않는다. 그 밖에 16편의 <춘향전> 비교, 한국 고전영화 최고의 악녀 캐릭터 도금봉, 신상옥과 최은희의 영화 같은 삶에 대한 에세이 등을 엿볼 수 있다. 영상자료원의 속사정이 궁금하다면 에필로그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