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에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3주째 독일 박스오피스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다. 칸영화제에서도 화제를 뿌렸던 이 영화는 나치 이야기를 다루고 독일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인지 독일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이자 독일에서 활동 중인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현지에서는 큰 화제다. 20년 전 동베를린에서 민주화 시위를 꽃피웠던 알렉산더 광장에 자리한 큐빅스 극장에서 젊은 남자 관객을 만났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나이는 28살이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다. 베를린에 산 지는 3년쯤 됐다.
-이 영화를 골라본 이유는.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기대가 갔다. 예전에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을 인상 깊게 봤었다. 타란티노에겐 기존 감독들과 다른 독특한 영화 화법이 있잖은가? 그의 영화는 보통 싸구려 할리우드 도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 기대가 채워졌나. =피가 많이 보이고 폭력의 강도도 셌지만 그래도 맘에 들었다. 특히 주제가 흥미로웠다. 영화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허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톰 크루즈가 나온 <작전명 발키리>는 결국 주인공의 히틀러 제거가 실패로 끝나지만, 타란티노 영화에선 유대인 사냥꾼을 굴복시키며 통쾌하게 응징하잖나.
-그래서 영화가 마음에 든 건가.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모든 배우들이 극중 인물을 잘 형상화했다. 크리스토퍼 왈츠의 연기가 특히 출중했고 브래드 피트도 좋았다. 극장 주인으로 나온 프랑스 여배우 있잖나. 가냘프고, 청순하고,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일 것같이 생긴 젊은 여성이 폭력시위에 가담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죽은 게 아쉬웠다. 이건 영화에 대한 비판인데, 영화에서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뭔가. =영화관에서 극장 여주인이 나치영화를 변형시켜 마지막 장면에 자신의 모습이 뜨도록 하는 장면이 인상에 가장 남는다. 또 하나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는데 유대인 사냥꾼이 프랑스 극장 여주인에게 우유 잔을 건네는 장면이다. 나치의 앞잡이 사나이가 무언가 감을 잡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었다.
-요즘 할리우드를 비롯해 독일 나치를 다룬 영화가 좀 있다. 독일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치를 다룬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독일인이라서 프랑스인이나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나치 역사는 독일과 상관이 있지만 조부모 세대의 일이다. 내가 사는 현재 독일과는 거리가 있다.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늦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의 단점이라면 당시 시대상을 너무 단순화한다는 거다. 가령 <작전명 발키리>는 나치 시대의 클리셰에 사로잡혀 있어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타란티노 영화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내용은 허구고 나치를 희화화했다. 패러디라고 할까.
-독일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나도 이런 국제적 영화에 독일에만 알려졌을 것 같은 얼굴들이 많이 나와서 좀 놀랐다. 그런데 아무래도 독일 배우들이 자신의 조상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테니 현실감이 더 있었던 것 같다. 만일 브래드 피트가 나치로 나왔다면 누구도 나치가 그렇게 생겼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