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괜찮은데. 오, 그것도 좋은 것 같다.”
9월23일 자정,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구혜선이 갸우뚱거린다. 촬영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 풍경을 커피 CF의 한 장면으로 착각했을지도. 그러나 이날만큼은 배우가 아닌 ‘감독 구혜선’이다.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공식 트레일러를 그녀가 연출하기로 한 것. 올해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해 화제를 모았던 그녀의 첫 단편 연출작 <유쾌한 도우미>가 이번 영화제에도 출품된 덕분이다. “배우의 연출 도전이라는 참신성만큼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만한 트레일러의 연출에 어울리는 것도 없다”는 게 영화제 관계자의 말이다. 거기에다 평소 절친이었던 김지운 감독의 “한번 해보라”며 옆에서 불어넣은 바람 역시 그녀의 결정에 한몫하기도. 그렇게 맡아서 써내려간 이야기는 이렇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와 그의 그림 속 여자가 있다. 늘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던 여자가 어느 날 그의 앞에 마주한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사랑으로 빚어낸 여자 조각상이 비너스 여신의 도움으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테이블 하나와 TV가 전부인 작은 방에서 이루어진 이날 촬영의 관건은 그림을 그리는 남자의 손과 여자의 다양한 표정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 촬영 직전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듯, 감독은 일일이 스탭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여자(서현진)는 테이블의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지’, ‘카메라는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 등을 말이다. “새겨진 문양이 괜찮은데 이쪽 벽을 배경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라는 미술감독의 제안에 감독은 “반대쪽도 괜찮던데. 으하하” 하며 웃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구혜선 감독이 답답했던지 조감독이 한마디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찍을 건지 빨리 얘기해줘요.” (좌중 웃음)
“새로운 생명을 얻은 여자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다”는 이번 트레일러는 10월6일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첫 공개된 뒤, 11월5일부터 10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제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