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멜로르가 개막식의 열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전날까지 해운대 길가의 나무들, 상인들이 깔아놓은 좌판들을 단숨에 집어삼킬 기세였던 강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 모습을 쏙 감춘 것. 덕분에 쾌청한 날씨 속에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10월8일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열렬한 반응과 함께 말이다.
역시 개막식의 꽃다웠다. 그 어느 때보다 게스트들이 화려해서다.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장동건을 비롯해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두 주역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 노익장을 과시한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이탈리아 호러무비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등 국내외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관객의 열렬한 반응 역시 예상대로였다. 게스트들이 지나갈 때마다 영화팬들은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게스트들이 많다보니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5말레이시아>의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감독 15명은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의 흥을 돋웠다. 또 일본의 유명한 개그맨 출신인 <심볼>의 마쓰모토 히토시 감독이 지나갈 때는 대규모 일본인 관광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게스트들의 입장이 끝난 오후 7시. 아름다운 밤을 빛낼 장미희, 김윤석의 사회로 개막식이 시작됐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세계 영화인들이 함께하는 부산영화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허남식 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과 함께. 이어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은 ‘뉴 커런츠 부문’의 심사위원장인 장 자크 베넥스 감독과 올해 신설한 ‘플래시 포워드’부문의 심사위원장인 배우 강수연을 소개했다. 이 두명의 심사위원장은 각각 “새로운 영화를 많이 발굴하도록 노력할 것”과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비아시아권 영화, 특히 아프리카 영화들을 소개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은 “세 대통령의 삶과 정치의 조화를 코믹하게 그린”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장식했다. “제가 얘기할 때는 스크린에 조시 하트넷을 안 비춰줬으면 좋겠다”는 유머로 관객의 웃음을 끌어낸 장진 감독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총 70개국 355편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앞으로 9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