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첫 번째 소설이 저녁상을 치우고 난 식탁 위에서 쓰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엌에서 태어난 소설들은 서재에서 집필된 작품과는 다른 향을 반드시 품고 있을 것이다. 영국 랭커셔 태생 화가 로렌스 S. 라우리(1887~1976)는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죽자 라우리는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어머니가 잠든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한장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화가의 회상이다. 라우리는 1910년 한 부동산회사의 임대료 징수원으로 취직해 42년 동안 장기근속하며 미술 활동을 병행했다. 라우리가 30대에 발견해 말년까지 꾸준히 천착한 화재(畵材)는 평생 살았던 20세기 잉글랜드 북부 공업 도시였다. 그는 본인과 이웃의 생활을 통해 노동이 무엇인지 익히 아는 화가였다.
라우리의 도시 그림을 풍경화라고 부르는 데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따른다. 자연의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도시는 반드시 사람 무리와 건물,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날씨와 그림자, 두 가지가 결여돼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림자를 그릴 수가 없다”고 토로한 바 있는 라우리는 바닷가 풍경을 그릴 경우조차 수면에 비친 반영은 못 본 체했다. 단일 소실점이 맺히는 지평선 언저리에는 하늘 대신 육중한 건물의 입면이 흐릿하게 드리워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치솟은 굴뚝이 꾸역꾸역 토해내는 잿빛 연기는 구름과 햇살을 압도한다. 그의 그림들은 ‘도시’라는 생활공간 자체를 ‘날씨’로, 거대한 그늘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1930년작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Coming from the Mill)은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영화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주인공인 노동자들은 어깨를 안으로 숙이고 땅을 보며 공장 문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황, 검정, 암청, 황토색으로 한정된 빛깔과 모양의 옷을 입은 면봉 크기의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바쁘게 갈라진다. 확실히 날씨는커녕 옆사람에게도 무관심해 보이는 군상이다. 배경을 차지한 건물은 자를 대고 그은 직선과 단색 색면이 어울려 매우 완강해 보인다. 언뜻 브뤼겔 풍경화의 20세기판 같지만 여기에는 공동체적 분위기와 풍광이 부재한다.
라우리는 본디 영국의 도시 풍경을 예쁘장하게 포장한 화가로 평가받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침울함과 기형성, 병적인 면모로 주목받았다. 본인은 “노동계급을 연민하거나 사회개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과 삭막한 주거 공간에서 은밀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그의 괴짜다운 일화가 있다. 라우리는 집이 불편하고 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려 28년간 이사하지 않고 눌러살았다고 한다. “처음엔 싫었고 그러다 익숙해졌다. 얼마가 지나자 녹아들었고 그 다음엔 홀렸다.” 집세를 걷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수히 오갔던 거리와 광장에서도 그는 비슷한 마법에 걸렸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