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씨네21>이 흥건히 젖었다. 침으로. 아마 약 10년 전 스타덤에 등장했던, 슈트 입은 브래드 피트의 전신 사진을 본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거부할 수 없는 마초의 유혹’이라는 특집기사를 보면서였다. 이 기사는 지지난번 내가 쓴 ‘진짜 사나이’ 편에 영감받은 기획이 자명하므로 이 기사를 보면서 타액 과다 현상을 겪은 여성 독자들은 나에게 감사의 메일이라도 날려주시길.
<씨네21>의 시대별 마초배우 리스트를 보면서 나도 리스트를 만들어봤다. 조건별 최고 마초남들. 아시다시피 신뢰도는 표준오차 ±99% 되겠다.
거친 면모: 거친 남자가 주는 매력은 어떤 긴장감에 있다. 그건 고전 마초 존 웨인이 주는 든든함이나 믿음과 다르다. <씨네21>에 최근 몇번 등장한 조석 개그를 다시 따라하자면 ‘나는 호텔 전화기 따위 부숴버리는 차가운 도시의 고독남,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간지다. 바로 러셀 크로다. 그와 있는 건 가슴 떨리지만 진짜 떨리기도 한다. 한대 맞을까봐. 긴장감이 흥분을 배가시킨다. 그러니까 여자의 숨겨진 SM 심리를 자극하는 남자다.
무식함: 홍상수 영화에 대해서 밤새도록 토론하는 남자는 질색이다. 패션 브랜드에 대해서 밤새도록 수다떠는 남자는 더 질색이다. ‘자칭’ 문화예술을 사랑하면서 올가을 유행까지 꿰고 있는 남자와 대화하느니 차라리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듣겠다. 여자 머리 꼭대기 올라가서 비평가가 되려고 하는 남자처럼 피곤한 부류는 없으니까. <개콘> ‘남보원’ 식으로 말하면 ‘예고없이 30분 지각, 눈썹정리 웬말이냐!’과의 남자인 거다. 제라드 버틀러는 보면 볼수록 무식해서 섹시한 타입이다. 한 꺼풀 벗겨보면 곰돌이의 품을 드러내는 무식한 남자, 최고다.
뻔뻔함: 남자의 기름기는 필요악이다. 심하면 사장님 개기름으로 전락하지만 부족하면 불편하고 분위기 어색하다. 무식함이 남자 특유의 천진함의 표현이라면 뻔뻔함은 일종의 여유다. 예를 들어 여자의 분노를 같은 분량의 분노로 맞장 뜨는 ‘남자평등주의자’보다 차라리 느끼하게 웃으며 봐주는 남자가 낫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아직 잭 니콜슨을 능가하는 배우가 없는 거 같다. 그의 태도에는 일정 정도의 기름기가 흐르지만 그 기름기가 마초의 품위를 불지피는 데 연료가 된다. 딸내미 아니라 손녀뻘이라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뽑아봤지만 나이 들수록 마초의 정신성보다는 육체성에 경도된다. 역지사지하자면 남자들이 예쁘고 젊은 여자 찾는 이유 이해된다. 뭐니뭐니해도 몸짱, 그것도 다 늙어서 하루 계란 한판 먹으며 쥐어짠 근육이 아니라 젊음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육체의 매력! 뭐냐고? 정답은 <내 귀의 캔디> 뮤비에 있다. 아 그니까 택연아~! 누나가 너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