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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블랙박스] 영화적인 것
2009-10-15

<카페 느와르>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씨네21>의 두 대표적인 평론가 정성일과 김소영의 영화가 상영한다. 운 좋게 이 두편의 영화를 미리 볼 기회가 있었던 나는 부산에 갈 채비를 하는 분들에게 약간의 개인적 소회를 말하고 싶어졌다. 그들의 영화에 대해 하나둘 곱씹어 말하기에 이 지면은 어울리지 않으며 부산에서 생생하게 이 영화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의 기대에 흠집을 내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흥미롭게도 관심도 화법도 다른 이 두 영화가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두 영화는 절실하고 간절하다. 그걸 알아달라고 가장하고 채근하지 않고 어떤 모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영화적인 것’으로서의 대면을 통해 절절하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려 한다. 그 답이 가까이에 있지 않아도 얼른 찾아오지 않아도 그들이 질문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두 영화에서 느껴지는 그 자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카페 느와르>가 청계천 인근을 유령처럼 떠도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을 구성하도록 할 때, <>이 쉼없이 움직이고 드나들며 이 창과 저 창 사이에서 정박되지 않는 질문을 모색할 때 그런 점을 느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비평의 다음 단계이며 영화를 사랑하는 최종단계라는 오래되고 과장된 믿음에 대해서는 얼마나 공감해야 할지 모르겠다. 트뤼포는 그렇게 말했지만 고다르라면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개별의 문제이며 등급의 기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동등한 가치의 다른 종류의 실천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정성일과 김소영의 <카페 느와르>와 <>은 비평으로 시작된 질문을 영화 만들기라는 작업에서도 밀쳐내지 않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껴안고 있다.

질문에 대한 일화로 시작했던 이 지면을 질문으로 가득한 영화로 끝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의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조그마한 비평적 쉼터라는 농담을 해가며 몇달간 이 지면을 게으르게 써왔다. 실은 지난 호로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그래도 작별의 변은 하는 것이 예의라기에 한번 더 사족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