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찾아오는 불청객, 허리가 또 탈이 났다. 한의사는 누적된 피로 탓이라며 사정없이 침을 놓았다. 내 몸에 좀 미안하다. 술·담배·커피 같은 어둡고 끈적끈적한 기호생활과 이별하고 독서·섹스·요리 같은 맑고 밝은 건강생활을 영위해야 하는데(왜 운동이 아니라 섹스냐면… 음, 애 낳고 살다보면 다 알아요).
계속 누워 있느라 장관과 총리의 인사청문회를 틈틈이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러운 빨랫감을 최대한 꾹꾹 눌러담은 트렁크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탈세, 다운계약서, 투기, 아들 병역면제, 논문 실적 뻥튀기, 심지어 기업인에게 받은 소액(!) 용돈까지…. 8명 후보자 중 불법·탈법·편법 의혹이 없는 이가 딱 한명뿐이라니. 이거야말로 SF소설에서 흔히 보는 병행세계(Parallel World)다. 이쪽 세계에서 명백한 위법도 저쪽 세계에서는 ‘과거의 관행’, ‘털어서 나는 먼지’ 정도로 취급받는다. 언제부터 엇갈렸을까. 조금씩 점점 벌어져 마치 2009년과 200Q년을 사는 것 같다. 이런 비현실적인 정보는 차단하는 게 몸과 마음의, 특히 허리의 건강에 좋을 텐데. 끙.
하지만 그게 또 그쪽 세계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거든. 후보자들의 ‘전공필수’ 같은 위장전입은 교육과 부동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핫한 양대 이슈다. 특히 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대표적인 위법 행위다. 집주인이 매매나 재개발 등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 제 어머니며 자식의 주민등록을 옮겨놔도 전세금 올릴까봐 싫은 내색 못하고 사는 세입자들 수두룩하다.
그쪽 세계의 ‘관행’과 ‘먼지’에 묻혀 정작 이쪽 세계를 좌우할 소신이나 정책은 듣기가 어려웠다. 애 셋 키우느라 만날 머리에 밥풀 붙이고 목이 쉬어 사는 이웃집 주부보다도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여성 정책에 대한 관심(견해는 차치하고)이 없다는 것과, 법무부 장관을 할 법질서를 잘 따른(지킬 능력은 차치하고) 사람이 그렇게 없나 싶었던 것과, 총리 후보자가 생각보다 몹시 키가 작구나 하는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쪽 세계 인사들 중 이쪽 세계 기준으로 적당한 후보감이 없다면, 앞으로 인사청문회는 위법 간증으로 대체하길 바란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