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저녁약속은 몇번이나….”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글쎄요”라고 말끝을 흐리다 “한 2~3회 정도”라고 대답한다. 마감날인 수·목을 제외한 월·화·금에 주로 저녁약속을 잡는 편이다. 그렇다면 ‘저녁약속’이란 무엇인가. 저녁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약속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본래의 의미보다 더 확장된다. 보통 저녁약속 자리에선 밥 말고 다른 걸 먹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차수를 여러 번 바꿀지도 모른다. 저녁이 아니라 새벽까지도 간다. 불야성을 이룬 도심 먹자골목의 낯익은 풍경을 떠올려본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오래도록 먹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이 참 많다.
서너해 전 어느 날의 저녁약속은 색다른 기억이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볼링만 치고 헤어져서다. 한 친구의 돌발 제안으로, 간단한 식사 뒤 밤 11시까지 볼링공만 죽도록 던졌다. 집에 돌아가는데, 팔이 뻐근해지면서 뭔가 생경한 느낌이 달라붙었다. 아마도 30~40대 직장인들의 평균적 문화와 습성, 행동패턴을 배반했기 때문이리라. 그 이후 또 저녁에 만나 볼링 같은 운동을 한 적은 없다.
최근에 이야기를 나눈 한 후배는 볼링보다 더 참신한 ‘저녁약속’ 사례를 들려주었다. 독서클럽이었다. 월요일에 한번씩 저녁에 만나 소설책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일을 하다 알게 된 30대 여성들이라고 했다. 소설을 정해놓고 각자 읽어온 뒤 함께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얼마 전 아프리카 출신 영국 여성작가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을 읽었다고 했다. 하나의 텍스트를 놓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는 토론이 퍽 재미있거니와 지식을 길러준단다. 또 다른 후배도 독서클럽을 한다고 했다. 그는 월요일 대신 토요일 저녁이었다. 직업이 전혀 다른 30대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인문 교양도서를 두루 읽는다고 했다. 최근에 토론한 책은 법조인들의 속살을 다룬 <불멸의 신성가족>. 궁금증을 다 풀지 못해 변호사 한명을 초청하기도 했단다. 독서클럽의 맛은 독서와 토론에만 있지 않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신 흐름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는 생산적인 기회였다. 직종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 의외로 보석 같은 고급정보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화클럽’은 어떠한가. 영화를 핑계로 만나는 거다. 잘만 하면 CGV와 <씨네21>의 지원 속에 짭짤하다. 지금 바로 ‘독자영화클럽’ 알림기사(26~27쪽)를 참고하시라. 영화관람권과 뒤풀이 비용을 지원한다지만, 그렇다고 독자영화클럽이 무슨 ‘대박 프로그램’은 아니다. 생활 속의 문화를 바꾸어나가자는 취지다. 저녁약속 많으신가? 술만 마시지 말자. 독자 여러분의 전폭적인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