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의 새로운 수장이 임명됐다. 문화관광부는 9월22일 이병훈 고려대 겸임교수를 새로운 영상자료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병훈 신임 원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1972년 <조선일보>에 들어가 사진부장, 편집부국장을 역임했고 서강대 겸임교수, 고려대 겸임교수를 맡아왔다. 이 원장은 25일부터 집무에 들어갔다.
영화계는 이병훈 원장의 취임을 의외의 일로 받아들인다. 영상자료원 원장추천위원회가 추천했던 최종후보는 김정진 감독, 김창유 용인대 교수, 지종학 전 KBS스카이 사장, 위계출 전 가나대사, 그리고 이병훈 원장 등 5명이었고, 그중에서 영화감독협회와 영화인협회가 추천한 김정진 감독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원장의 임명을 놓고 그가 고려대 출신이라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사진으로 보는 이명박>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는 점 등이 배경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원장은 “<조선일보> 사진부장 시절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고 영상디지털아카이브를 6년간 운영했으며 저작권 등도 연구한 경력을 참작한 결과일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임명 배경이나 ‘출신성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영상자료원은 긴급한 영화계의 현안을 풀어나가야 하고 어마어마한 금액의 영화발전기금을 운영해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사라져가는 영상자료의 발굴과 보존, 복원을 주업무로 하는 영상자료원은 기본적으로 학술적인 성격이 짙은 곳이다. ‘영화정치’나 산업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 영상문화 발전이라는 ‘중립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조선희 전 원장도 최근 발간된 책 <클래식 중독>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대다수 기관장이 물갈이됐음에도 본인이 임기를 채운 것에 대해 “영상자료원장이 그만큼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자리인 때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결국 영상자료원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영상자료의 발굴과 보존, 복원이라는, 중요하지만 티나지 않는 일을 꾸준하게 꾸려나가는 능력이다.
그렇다고 영상자료원장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당장 가시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듯 보이는 발굴, 보존, 복원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업무다. 빠듯한 예산을 운영하는 일이나 정부로부터 적정한 예산을 따내는 일은 원장이 해야 할 가장 커다란 과제일 것이다. 고전의 대중화에 관한 고민 또한 필수적이다. 지난해 김태용 감독이 연출했던 <청춘의 십자로> 공연 같은 경우는 모범적인 사례다. 집이 상암동과 가까운 터라 그냥 한번 가볼까 하는 심정으로 보게 됐던 그 공연은 1930년대의 한국 무성영화조차 현대의 관객과 소통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날 함께 웃고 떠들던 가족관객은 고전영화가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제2 수장고 건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고 나머지 업무는 조선희 전 원장이 벌인 일을 마무리짓는 것”이라고 계획을 설명했다.
영상자료원 내부의 분위기는 대체로 환영하는 쪽이다. 이 원장이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고, 그동안 원만하게 조직을 운영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영상자료원을 통해 국정을 홍보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려 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