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까지 10억원은 모아야 궁색하지 않게 산다는 언론의 협박이 무색하게도, 주변을 둘러보니 변변한 은행 잔고를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 없다. 자의건 타의건 일단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프리랜서로 살고 싶어 하고, 더 벌기보다 덜 쓰기에 적응해간다. 게다가 야덕(야구 덕후)이 주변에 늘면서 노후 계획이랍시고 진지하게 하는 말이 “야구장 매점 운영”이나 “응원팀의 모든 경기 보기”. 30년 뒤 옹기종기 모여앉아 ‘유땅’, ‘투실’을 야구 기록지에 받아적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게 되면 내 이름을 한번 불러주시길.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건, 당연한 말이겠지만 귀농이다. 농사를 짓겠다기보다는 가능한 한 돈을 쓰지 않고 굶어죽지도 않을 것 같은 방법으로서의 시골행을 꿈꾼다는 말이다. 집없이 살기에 서울은 버겁다. 고개를 90도로 위로 꺾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 하늘이 그립다. 큰곰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려면 지구과학 책을 펴야 한다. 사온지 2주가 지나도록 탱탱한 토마토가 무섭다. 친가 외가 모두 삼대째 서울서 산 터라 톨게이트만 가도 우주여행을 떠나는 듯한 아득함을 느끼는 주제에 이러고 있다.
<굿바이, 스바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런 자연친화적 노후에 대한 공상 때문이었다. 이 책을 쓴 덕 파인은 나보다는 훨씬 교양있는 이유(기름을 적게 쓰고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로 살기)로 뉴욕을 떠나 뉴멕시코로 갔다. 그 다음부터는? 짐작 가능하겠지만 도시 촌놈이 겪을 법한 지옥이자 천국이 펼쳐진다.
자연친화적 삶을 그린 책은 대개 명상과 깨달음을 소중히 여기지만 <굿바이, 스바루>에는 오로지 슬랩스틱만이 존재한다. 덕 파인은 12년 탄 자동차 스바루를 폐식용유를 연료원으로 쓰는 포드로 바꾸고,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염소를 키우고, 코요테로부터 염소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우리에서 잠을 잔다. 장보기 목록에 ‘오렌지주스, 와사비, 전기구이 통닭, 아이스크림’ 대신 ‘건초, 엽총 탄창, 살아 있는 병아리들, 아이스크림’을 적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폭우가 내리면 수시로 전기가 끊기고, 집 밖에만 나가면 감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삶을. 패스트푸드점이나 중화음식점에서 사용한 폐식용유를 연료원으로 쓰기 위해 자동차를 사 개조를 한 뒤 운행을 시작하니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깐풍기 냄새가 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 “(이 차의) 유일한 부작용은 깐풍기가 지독하게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물탱크를 설치하니 방울뱀이 가장 먼저 찾아오고, 간신히 여자친구를 만들었더니 바뀐 생활리듬을 이용해 코요테가 닭을 먹어치우고, 살아남은 닭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으로 달걀을 낳지 못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덕 파인이 행복한 커다란 웃음 그 자체다. 그의 집안 내력인 암에서 멀어지고, 석유 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염소와 개와 닭과 사랑하는 여자가 함께 있으니. 그리하여 고민은 계속된다. 맥주와 통닭을 주식으로 하는 야구장에서의 노년인가, 뱀과 사투를 벌이며 자연현상에 희로애락하는 자연에서의 노년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