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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단정하는 건 단정치 못해요
김연수(작가) 2009-10-01

영화 <애자> 속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다

재주 많은 친구를 둔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지난번에 김군이 그린 것처럼 내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노예들이 벽돌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바벨탑의 길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 같다(김군처럼 직접 그려주는 상냥함을 발휘하면 좋겠으나, 난 원래 말로 떠들어대는 걸 더 선호한다). 예를 들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자리는 예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는 조금 더 위쪽에 있게 되는 그런 길 말이다. 김군이 (아마도 원고 분량을 줄일 속셈으로, 게다가 엉성하게) 그린 그래프의 선들처럼 인생이라는 게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살아보니까 그건 나선형에 가까운 진행이다. 말하자면 ‘좋았다가 무덤덤, 나빴다가 무덤덤’의 무한반복. 그러니까 그래프가 상한선을 치고 고공행진을 계속하거나, 영원히 하한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이건 지난 15년 동안 어떻게 하면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도달하게 된 결론이기도 하다. 핵심은 ‘기승전결’에 있다. 그러니까 일단 발단하면 우리 인생사는 스스로 전개되고 절정에 올랐다가 결말에 이른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떤 소설이든 책을 펼치면 적어도 50쪽 안에서는 발단하게 돼 있다. 일단 발단하게 되면 이야기는 ‘좋았다가 무덤덤, 나빴다가 무덤덤’을 반복하면서 기승전결의 기나긴 길을 밟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이론이 마음에 드는데, 그건 어떤 이야기든 결말에 이르면 반드시 절정의 순간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결말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순간이든 절정이랄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지금이(“좋았다가 무덤덤, 나빴다가 무덤덤인데도?” “그렇다”).

‘좋았다가 무덤덤, 나빴다가 무덤덤’

지나고 보니,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일은 빈번하다. <애자>를 보다가도 그런 옛일이 떠오르더라. 영화에는 경향일보사에 장편소설을 투고한 애자가 편집장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편집장은 투고한 작품으로 애자가 이미 문예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고쳤다고 하더라도 그건 표절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면 이 바닥에서는 글을 못 쓸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순간, 나는 ‘어머머머!’ 낯을 붉혔다. 자기 작품을 고쳐 썼는데 어떻게 표절이라는 말을 그토록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는 생각 이전에 문예장학생으로 뽑힐 때는 단편소설일 테고 상금 1억원짜리 공모라면 장편소설일 텐데 더더군다나 어찌하여 표절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넘어서 그 바닥은 어떤 바닥이기에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학생에게 글을 못 쓸 것이라고 못 박듯이 말할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자>에는 이런 단정적인 태도가 자주 나와서 꽤 불편하더라. 애자의 어머니가 흥분하다가 쓰러졌을 때, 거기 모인 수의사들은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애자의 말에 이미 상태가 위독하여 구급차를 불러도 가망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애자가 손수 엄마의 목에 칼을 찌르는 건 바로 그 단정적인 말 때문인데, 나로서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 유기견을 보호하지 않는 수의사들에게 흥분해서 소리치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었을 때, 그 사람 앞에서 구급차를 불러도 가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사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엄마의 목에 칼을 찌르는 딸이 있을까? 내가 애자였다면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 같다. 이야기의 결말을 모르는 한에는 그 상황에서 구급차를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거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말을 안 뒤에야 우리는 그때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

내게도 애자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어떤 편집장의 권유로 1억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금이 2천만원 정도는 되는 공모에 장편소설을 투고했다. 방위 시절에 심심해서 쓴 단편소설을 개작한 소설이었다. 그 다음에는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작품이 본심에 올라갔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당선이 됐으니 출판사로 한번 찾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강남까지 찾아갔다. 마땅히 발걸음은 투스텝, 입에서는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와야만 옳을 테지만 어쩐지 가기 싫은 곳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 소설이 책으로 출판되면 내 의사와 무관하게 미래가 바뀔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출판사 건물까지 찾아간 나는 차마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1층 카페에 앉아서 30분 동안 심각하게 그 상을 받아야만 할지, 받지 말아야만 할지 고민했다. 안 받으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지만, 받으면 예측 불가의 삶이 시작될 것이니까.

나에게도 애자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지

고민 끝에 나는 그 상을 받기로 했다. 2천만원 정도라면 불확실한 삶도 감미로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불확실한 미래로 가는 4차원의 문이라도 되는 양 비장한 마음으로 출판사 문을 열고 들어가서 차마 소설에 당선된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아까 위치 물어보느라고 전화 드렸던 사람인데요”라고 말을 꺼내니 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환하게 반기며 내게 말했다. “아, 왜 이렇게 늦었어요. 책은 저기 묶어놓았으니까 가져가세요.” 그때 나이가 고작 스물다섯살, 암만 봐도 소설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배송 아르바이트 학생에 가까웠기 때문에 책 가지러 온 사람으로 오인됐던 것이다. 내게 불확실했던,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예정됐던 것처럼 진행된 소설가로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책이 나온 뒤, 나도 경향일보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향신문사에 인터뷰하러 간 일이 있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두리번거리는데 한쪽 칠판에 각종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연락처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거긴 주간지 기자들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광고 유치 때문에 적어놓은 연락처였다. 때는 이제 막 성인주간지 시장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던 1994년. 늙은 남자기자들이 만들던 그 주간지가 폐간된 뒤에도 내가 보던 그 칠판의 연락처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칠판의 글자들을 바라봤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 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내가 단정적으로 잘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불편하게 여기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라면 짐작할 수는 있지만, 단정하기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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