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축물을 돌아볼 때면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가 계단이다. 계단을 통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뒤로 공간이 펼쳐지는데,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며 새로운 공간과 만날 때는 건물의 육체성을 몸으로 실감하게 되곤 한다. 종교적인 건축물의 경우 높지 않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계단에 집중해 발을 옮기다 보면 계단이 사색과 깨달음의 도구구나 싶어진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는 생활에 밀접하지만 막연하게만 인지되었던, 혹은 불편함으로만 존재를 인정받았던 계단의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캔다. 의도와 관계없이 생겨난 ‘변형된 대지 계단’(등산로를 생각하면 된다)이 가장 기초적인 형태였고, 고대 종교에서 계단은 하늘로 오르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쭉 뻗은 곧은 계단이 하늘을 향해 긴 거리를 수직으로 거침없이 뻗어 올라가는 장면은 그 자체가 종교적 아이콘이었다. 이런 장면은 곧 정치적 권위와도 직결되어서, 고대 문명에서 정치 지도자에게 곧은 계단을 갖는 수직 구조물은 필수 조건이었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전쟁용 건축물인 성채에 부속된 계단(나선계단의 종교적 의미와 정서적 효과), 그리고 공공영역으로 드러난 노천 계단(예컨대 로마의 스페인 계단) 이야기다. 이 책에는 다양한 나라에 실재하는 계단 사진과 그림 자료가 실렸는데 이 또한 굉장한 볼거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계단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리라.